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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장 그리스 세계와 그 문화 

  

 제4절 펠로폰네소스전쟁과 그리스의 쇠퇴

 

펠로폰네소스전쟁

- 페르시아 위협 사라진 후 아테네 델로스동맹 발판으로 강대국 발전, 스파르타와 충돌 불가피

- 에게해와 아시아에서 패권 장악 아테네, 중부 그리스의 보이오티아와 코린트, 메가라를 위협하며 코린트 장악, 서부지중해로 진출하려고 하자 스파르타와 충돌 발생(459~447 B.C.) 

- 아테네와 스파르타 30년간 평화조약 (446 B.C.) 

- 그리스 본토와 서방의 교량적 위치한 코르키라가 상업상 이해관계 충돌로 아테네와 동맹을 원하게 되고(433 B.C.)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28년간 (431~404 B.C.)  펠로폰네소스전쟁 발발. 

- 기원전 430년 여름 아테네 페스트 질병으로 큰 피해, 페리클래스 사망( 429 B.C.)   

  승패 없이 10년간 전쟁 지속, '니키아스의 평화' 협정(421 B.C.) 

- 페리클래스의 친척 알키비아데스 추대, 본토에서 스파르타 꺾기 어렵다고 판단, 이탈리아와 시칠리아 공격 계획.

- 기원전 415년 알키비아데스 지휘, 200척 함대 시칠리아 대원정 시작, 본토의 정적들 민중 선동 규탄, 알키비아데스는 스파르타로 도망, 시칠리아 대원정 완전한 실패( 413 B.C.) 

- 아테네 함대 스파르타 함대(페르시아 원조 확보)에 승리했으나 폭풍으로 익사한 수병이 많아, 6명의 장군 규탄, 집단 처형 - 헬레스폰트 입구에서 아테네 함대 결정적으로 패전(405 B.C.)  아테네 제국 완전 해체, 모든 해외 재산 포기, 스파르타 동맹 시로서 그 지휘하에 종속, 함대는 12척으로 제한. 

- 펠로폰네소스전쟁 중 아테네의 정치적 내분, 알키비아데스의 스파르타로 도망, 스파르타의 페르시아 결탁

- 아테네의 민주정치는 정견없는 민중지배의 어리석음과 위험을 아테네의 국운을 걸고 드러내 놓음으로써 페리클레스의 이상과 기대가 현실과 얼마나 거리가 멀었던가를 여실히 보여 주었다. 이제 남은 길은 폴리스 상호 간의 끊임없는 대립과 갈등을 통한 그리스 전체의 쇠퇴였다. 

 

그리스의 쇠퇴

-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주둔 스파르타 수비대 후원 하에 30인 참주 정치, 과두제 , 공포정치, 민주정치 회복되었으나 이전 페리클레스시대의 민주정치는 아니었고, 소크라테스 처형도 이 시대의 민주정치였다. 

- 아테네를 대신하여 지도적 지위를 차지한 스파르타, 각 폴리스 군대, 감독관 파견, 고액 공납금 요구, 억압적

- 페르시아 왕위 내분 발생시 소아시아 출병, 실패, 함대 상실(394)- 이 틈에 아테네 동맹 시 다시 규합, 테베 중심 결합- 스파르타는 페르시아와 화평(386 B.C.) , 소아시아를 완전히 페르시아에 넘겨주는 대신 본토 패권 유지하려 함, 그러나 함대 상실, 보수적, 경직된 정치체제의 농업국가 스파르타로서는 힘겨운 일. 

- 스파르타를 증오하던 테베의 펠로피다스를 중심으로 민주정치 회복, 스파르타 수비대 격파, 에파미논다스의 유능 전술, 지휘로 격파, 스파르타의 헤일로타이가 되어 있던 메세니아를 해방 - 스파르타시민의 생활기반 붕괴, 테베의 패권 장악

- 펠로폰네소스 전쟁 이래 아테네, 스파르타, 테베 사이의 패권 다툼은 그 누구에게도 결정적인 승리를 안겨주지 않고, 개별적인 폴리스의 자유와 독립을 고수하려는 분립주의를 더욱 강화시키고, 이에 따라 폴리스 상호 간의 대립과 분쟁을 다시금 격화시킴으로써 그리스의 정치정세를 혼란과 무정부상태로 빠뜨렸다. 

-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위대한 철학자의 탁월한 정치적 성찰도 폴리스라는 좁은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기원전 4세기의 그리스가 당면한 현실정치의 혼란을 수습할 구체적 방도를 제시하지 못했다. 

- 경제는 발전, 농업 기술 향상, 생산력 증대, 수공업 성황, 상업, 무역 번창, 노예제 사회

- 정치 무관심, 공직 기피, 군역 기피, 시민 중장보명은 직업 용병 대치, 용병은 페르시아, 적대 폴리스에 가담

- 기원전 4세기 시민공동체 성격 상실, 폴리스사회의 퇴폐적 변질, 4세기 후반 신흥 마케도니아에 어이없이 굴복 원인.

 

마케도니아의 흥기 

- 마케도니아인의 기원 불확실, 그리스계거나 그리스와 트라키아인, 일리리아인과의 혼합민족.

-  그리스인 남하 때 북방에 부족사회 형태 유지하였기 때문에 후진적이었고 그리스 눈에는 야만인이었다. 

   그리스식민시를 통해 그리스문화를 받아들이면서 서서히 발전을 계속.

- 기원전 4세기 중엽(359 B.C.) 마케도니아 왕위에 오른 필립, 정치,군사적 개혁을 통해 씨족 기반 봉건 왕국을 견고한 통일 왕국으로 만들고 막강한 상비군 보유, 자유로운 소농출신의 보병 밀집부대, 대귀족지주 들은 왕의 전우로서 중무장의 우수한 기병대 형성.

- 필립은 젊은 시절 테베에 볼모로 오래 머문일이 있었다.  마침 테베가 패권을 잡고 있었을 때였고 에파미논다스로부터 정치, 전술 에 관한 많은 것을 배웠고 그리스 사정에 정통할 수 있었다.  

- 흐트러진 그리스 통합, 숙적인 페르시아 정복 계획 수립, 페르시아 원정 출발전 암살, 47세 (336 B.C.) 

- 필립의 뒤를 이어 알렉산더 왕위(20세), 군대 충성 확보, 경쟁자 제거, 그리스 내의 반마케도니아전선의 테베와 아테네 격파, 페페 파괴, 그리스 규합 후 페르시아원정 시작(334 B.C.) , 그리스 폴리스들 정치적 생명 완전 상실. 

 

 

 

민석홍, 제2판 서양사개론, 삼영사, 2006, pp6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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