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장마철 계속되는 비로 뉴스가 넘쳐나고 이 우중에도 여해 인문학 스터디의 열의는 점점 더해 가고 있다.

 

여러 인문학 강의와 콘텐츠들이 현수막에 걸리지만 임진왜란과 관련이 적을 것만 같은 충주에서 충무공 이순신 장군 관련한 수준 높은 강의를 연속해서 들을 수 있고 자발인 관심과 열의를 보여주시는 선생님들을 만나며 여러 분에게 꼭 필요한 사업이고 모임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고 있다. 2~30년 연구의 정수를 아낌없이 쏟아 주시는 임원빈 교수님께 감사드리고 '지금 우리는 공부할 때...' 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시의성 적절한 사업과 주인장의 운영이 곧 타이밍이 아니고 무엇이랴.

 

문화해설사 연경연 선생님, 숲해설가 엄대진 선생님, 박순덕 선생님께서 처음 참여해 주셨다.

참석자(존칭 생략): 임원빈, 오희연, 김경은, 박동수, 김명란, 이영선, 권혁분, 이주화, 연경연, 엄대진, 박순덕, 초등학생 이주영, 이하영, 어머님(14명) 

 

비 많이 오는 초복 날 여해 인문학 스터디 3회차 모임이 진행되었다. 

복날에 빠질 수 없는 수박! 준비~

 

영화 명량, 한산에서 보았던 배 위에서의 백병전은 과연 사실이었을까? 

 

* 백병전(白兵戰, hand-to-hand combat) : 적에게 접근해서 이나 , 총검, 개머리판, 맨몸 등으로 근접전을 펼치는 것. 

 

* 명량해전 : 13척 vs 133척 중 조선 수군의 배는 1척도 손상을 입지 않고 왜선 31척이 격파됨 ( 최소 3000명 이상 사망)

선두에서 싸운 이순신 통제사 배에서의 전사자는 2명, 부상자 3명(적의 조총에 의한) (난중일기) 

당시 해전이 대량 살상 전투 양상이었다면 절체절명의 전투였음에도 불구하고 위 기록은 엄청난 사실을 함축하고 있는 것. 명량해전 당시 전투는 일정한 정도의 거리를 두고 전투가 벌어졌을 것이다. 즉 접전이 없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배 위에서의 백병전이 없었다 = 칼싸움이 없었다. 

 

* 한산해전 : 영화에서 보인 거북선의 충돌전술, 용머리 들락날락, 백병전, 학익진을 펼쳐서 59척 모두 격파는 모두 사실과 다르다. (사실 - 개전 초기에 학익진을 펼쳐서 적의 선두의 2~3척을 집중 포격 격파를 통해 기선을 제압함)

전라 좌수군(이순신), 전라 우수군(이억기), 경상 우수군(원균) 삼도의 수군이 함께 전투를 벌였으나 장계의 기록에는 전라 좌수군만 전사자 19명, 부상자 115명 기록,  인구비례로 살펴보면 한산 해전에서의 조선 수군 전체적 전사자 50여명, 일본 왜선 59척 격파 및 납포(8000~9000명 전사)

 

* 새로운 관점에서 한산 해전을 살펴보면 '한산해전은 이순신 장군이 승리의 확신을 가지고 벌인 대표적인 해전'이었다. 

이길까, 질까의 고민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왜적선을 모조리 전멸시킬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전과를 확대시킬 수 있을까? 적선뿐만 아니라 적선 위의 병사들까지 모조리 섬멸할 수 있을까? 를 고민하고 작전 계획을 세웠다. 

 

* 거북선의 전과: 영화에서처럼 좌충우돌했다면 최소한 적선이 5~10척 파괴됬을 법 하지만 실제 전과는 좌돌격장 이기남이 일본 대선 1척 나포(충돌해서 격파한 것이 아니라), 일본 수군 머리 7급 베었고, 우돌격장 박이량이 일본 수군 머리 1급을 베었다. 즉 정리하면 한산 해전에 참전한 거북선은 2척이고 전과는 왜 대선 1척 나포, 왜군 머리 8급으로 영화에서 처럼 좌충우돌 충돌 전술을 행한 것은 아니다. 

 

* 나포(拿捕) : 사람이나 배, 비행기 등을 사로잡음. 

 

 

* 이순신 장군의 동상을 통해서 알아야 할 이순신 선양의 역사와 사실

 

  이순신의 선양 역사는 나라의 위기 상황이 있을 때 어김없이 소환되었다. 조선의 제2 부흥기를 주도했던 정조대왕은 조선사에서 이순신 장군을 가장 선양한 임금이셨고 대한민국 수립 이후에는 박정희 대통령( 아산 현충사, 광화문 동상)

 

이순신 장군의 최초의 동상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1952년 (6.25 전쟁 진행될 때)  

어김없이 칼을 들고 있는 동상들이지만 활을 든 최초의 동상이 제작되었다(2015년 해군사관학교)

조선은 활의 나라 vs 일본은 칼의 나라 

이순신의 어린 시절 부터 전쟁놀이 활쏘기 등장, 난중일기에 거의 매일 같이 등장하는 활쏘기 훈련 (칼싸움 훈련은 한 곳도 없다), 조선은 동이족, 유학의 나라 유학자로서 선비로서의 수양 덕목 중 활쏘기(전쟁 때는 무기, 평시에는 정신 수양)는 기본.

 

* 유능한 장수의 조건 (손자병법 - 군형편) 

古之所謂善戰者,  勝於易勝也     옛날에 이른바 싸움을 잘하는 자는 쉬운 승리에서 승리하는 자이다

 故善戰者之勝也, 無智名, 無勇功”   고로 싸움을 잘하는 승리는 지혜롭다는 명성도 없고 , 용맹스럽다는 공도 없다

 

보통은 일당백이면 멋지고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쉬운 승리는 당연하다고 여겨 일당백의 승리에 도취할 수 있다. 

여기서 주목! 모든 강의의 킬포인트가 숨어 있는 듯! ( 제대로 알아듣기 위해 숨죽여서 머리를 계속 써야 했다ㅜ.ㅜ)

 

위대한 병법가의 큰 문장을 통해 그것을 시종일관 그대로 적용한 이순신 장군의 '이기는 싸움'에 관해 우리는 당연한 생각에서 벗어나 '쉬운 승리로 만들어 놓고 싸우는 것', '쉬운 승리를 만드는 과정'에 주목하고 공부해야 한다. 

당연한 듯하지만 사실 엄청난 행간이 아닐 수 없다. 간과할 수 있는 '쉬운 승리'의 과정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바로 여기에 이순신이 유능한 장수인 진짜 이유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공부라는 것이 이런 것이지...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았는데 괜히 마음이 뿌듯하다... '준비없는 승리는 없다' 

 

* 이순신이 유능한 장수인 이유 - 관점 바꾸기 

 - 열세한 상황에서 우세한 적과 싸워 이겼기 때문이 아니라, 언제나 우세한 상황을 만들어 놓고 싸웠기 때문이다.

이 사실에 대한 증명도 거침없이 자료로 보여주셨다. (임원빈 교수님 강의 강력하게 추천!)

성웅 이순신 장군의 생애, 임진왜란 사에 대해 모르는 것도 많고 알아야 할 것도 많지만 그것들과 함께 꼭 가져야 할 공부를 제대로 잘하고 있다는 생각에 기쁘고 절로 감사함이 든다. 임원빈 교수님 좋은 강의 해주셔서 참으로 감사합니다. 

'공부는 속지 않기 위해서 하는 것'이라는 말이 비로소 실감 난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