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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그리스 세계와 그 문화 

 

  오리엔트문화는 에게문명을 꽃피우고, 그리스인에게도 전달되었다. 그러나 그리스는 오리엔트와는 근본적으로 성격이 다른 독창적인 문화를 창조하고 발전시킴으로써, 오늘의 유럽문화의 참된 원천이 되었다. 

  에게문명은 오리엔트의 영향을 받으며 성립하였으나, 오리엔트문화와는 성격을 달리하였고, 특히 후기의 미케네문명은 그리스의 직접적인 선구가 되었다. 미케네문명이 파괴되고, 그리스사의 암흑기가 시작되었을 때, 오리엔트 세계에서는 강대국들이 쇠망하여 일종의 '힘의 공백 상태'가 나타났다. 그리스는 바로 이 힘의 공백 상태 속에서 그들의 독자적인 생활 기반인 '폴리스'를 형성시키고, 독창적인 문화 발전의 기초를 닦았다.

  그리스는 그 지리적 여건으로 바다와 친숙했고, 해외로 진출하였다. 그리하여 여기저기에 식민시를 건설함으로써 지중해 일대가 하나의 역사적 세계로 형성될 기반을 조성하였다. 

  이와 같이 그리스가 수많은 폴리스를 바탕으로 독자적인 문화를 발전시키고 있을 무렵, 동방에서는 오리엔트 세계가 아시리아와 페르시에 의하여 통일되고, 기원전 5세기에 두 나라는 자웅을 겨루게 되었다. 이 대결에서 승리한 그리스는 아테네를 중심으로 황금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대왕은 그리스 문화를 계승하고, 오리엔트 세계를 정복하여 그리스 문화를 그곳에 전파시켰다. 그리하여 성립한 헬레니즘 문화는 다시 로마에 의하여 계승됨으로써 유럽의 고전문화가 형성되게 되었다. 

 

  제1절 에게문명

 

에게문명= 미노아문명(미노스 왕 이름을 땀, 크레타 중심 발전) + 미케네문명(그리스 본토와 트로이 포함)

 

발견

19세기 중엽까지 전설상 존재, 땅속에 묻혀있던 에게문명이 1870년대 이후 호메로스의 서사시를 애독하던 아마추어 고고학자 하인리히 슐리이만(1822~1890)에 의해 드러나게 됨.

 

하인리히 슐리만 : 집안이 가난하여 고등교육을 받지 못하고 점원으로 일하다가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의 주제인 트로이전쟁이 단순한 전설이나 시인의 창작이 아니라 실제 있었던 전쟁임을 증명하려는 꿈을 품고, 독학으로 공부했으며, 사업으로 돈을 벌게 된 수 1870년 소아시아의 서북부에 있는 트로이로 지목되는 곳을 발굴해서 9개의 성채와 도시를 발견한다. 나아가 트로이 공격의 총사령관이었던 아가멤논(Agamemnon)의 미케네(Mycenae)를 발굴하여 분묘와 황금마스크를 비롯해 많은 유물을 발견했다. 

 

1900년 영국 고고학자 아더 에반스는 미노스왕(Minos)이 지배하는 해상왕국이 있었다고 전해지는 크레타(Crete)섬의 북쪽에 있는 크놋소스를 발굴하고 '미노스와의 미궁'으로 알려진 궁전을 발견.  선상문자가 기록된 토판문서를 많이 발견.

 

이로써 트로이전쟁의 사실성이 확실해졌고, 그리스문화보다 앞선 시기에 에게해 주변의 고도의 청동기문명이 성립해 있었다는 사실이 명백해짐.

 

1925년 영국 건축가 벤트리스  암호 풀리 방식 적용, 선상 B문자 해독에 성공, 초기 그리스어임을 확인 ( 크레타 섬에서 주로 사용된 선상A문자는 아직 미해독), 에게문명, 미케네문명에 관한 연구 획기적인 단계로 접어들게 됨. 

 

미노아문명

  크레타를 중심으로 발전, 오리엔트의 영향을 받으며 기원전 3000년기 중엽에서 청동기 시대로 들어섰으며, 기원전 2000년을 지나서 선상 A문자 사용. 이 문명의 담당자는 소아시아로부터의 이주민으로 추정.

기원전 2000년기 부터 비약적 발전, 전성기. 정교한 도자기, 크놋소스에 미노스왕의 장려한 궁전 건조. 

기원전 16세기 두 번 파괴었다가 재건, 기원전 1450년 선상 A문자 대신 선상 B문자 출현(미케네인이 크레타를 지배 의미)

기원전 14세기 크놋소스의 궁전 돌연 파괴, 미노아문명 종말(미케네인 칩입이라고 생각되었으나 1960년대 발굴에 의해 크레타 북쪽에 있는 테라(Thera, Santorin)섬의 화산폭발로 인한 화재와 대해일의 결과라고 생각되고 있다.)

 

   바다를 무대로 활발한 해상무역, 우수한 건축가, 기술자, 예술가

미노아 사회는 전체적으로 활달하고 유복하여 즐거운 양상을 보여주며, 상류층은 축제와 스포츠를 즐기면서 쾌적한 생활을 보냈다. 노예 거주지나 거처가 발견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사회계층으로서 노예계급이 존재했는지는 의심스럽지만, 장대한 궁전건축에는 상당히 많은 노예가 사역되었을 것이다. 

미노아 예술의 대표적인 것은 아름답고 정교한 도자기와 '파리의 여인'이라는 별칭이 붙은 매우 개성적인 여인의 그림에서 보듯이 궁전의 프레스코 벽화이다. 

 

미케네문명

  선상 B문자의 해독으로 미케네문명의 담당자는 그리스인의 선조라는 것이 확인되었다.  인도유럽어족에 속하는 그리스인은 일찍이 기원전 2000년경부터 남하하여 그리스 본토에 자리잡고 원주민과 혼합하였다. 

중부 그리스와 펠로폰네소스반도에 많은 소왕국을 건설하였고, 미케네는 펠로폰네소스의 여러 왕국 중 '황금의 미케네'라고 일컬어질 정도로 부강한 맹주격이었다. 

  선진문화인 미노아문명을 흡수하면서 발전했으며 특히 기원전 16세기 그리스 본토의 '미노아化'라고 할 만큼 미노아의 영향은 컸다. 

아테네의 왕자 테세우스(Theseus)가 미노스왕의 딸 아드리아네(Adriane)의 도움을 받아 반인반우 괴물 미노타우루스(Minotaurus) ( 아테네가 보내는 젊은 남녀를 잡아먹는 반인반우 괴물) 를 퇴치했다는 전설은 당시 미노아와 그리스본토와의 관계의 일단을 말해주는 것.

  기원전 15세기 중엽 미케네가 크놋소스를 지배하게 된 것 같으며, 미노아문명이 몰락한 후 미케네가 에게해의 패자가 되었다. 

트로이전쟁(1240~30 B.C.경) 은 트로이 왕자 파리스(Paris)가 아가멤논의 동생인 스파르타왕 메넬라우스(Menelaus)의 왕비 헬렌을 유괴한 원인보다 강대해진 그리스본토의 소왕국들이 미케네를 맹주로 결합, 소아시아로 진출한 대원정이었다.

그 후 미케네 쇠퇴, 해상 민족에게 시달림 받고 기원전 12세기에 그리스인의 마지막 이주자인 도리아족(Dorians)에게 파괴되었다.  

 

  미노아 못지않게 번영, 왕족을 위한 커다란 벌집 같은 원형 분묘, 도시주변에 두꺼운 거석으로 견고한 성벽 축조. 

후대 그리스인들은 그 성벽을 '키클로프스의 성벽'이라고 불렀다.( 그 돌들이 워낙 커서  신화에 나오는 애꾸눈 거인 키클로프스만이 쌓을 수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 기본적으로 미노아 예술을 계승하면서도 사무적이고 군사적 성격이 강하였다.

 기본적인 생산은 농업과 목축, 왕실 중심 분업화한 수공업도 발달. 국내 교환경제는 미미했으나 외국 교역 매우 활발, 광범위하여 에게해를 지배하고 히타이트, 페니키아, 이집트 등과 접촉.

 

  제우스, 포세이돈 등 후대 그리스인들이 믿었던 신들을 신봉했으나 미노아인들이 믿었던 뱀 여신(snake-god-dess)을 더 신봉한 것 같았다. 

사회구조 : 국왕- 귀족적인 전사 계급- 일종의 관료, 서기- 상인, 농민- 노예

 

 

 

 

민석홍, 제2판 서양사개론, 삼영사, 2006, pp4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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