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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그리스 세계와 그 문화 

 

  제2절 폴리스의 성립과 발전 

 

자연환경 

-  그리스 기후와 지세는 지중해형 풍토. 그리스 본토는 산이 많고 평야 적고 산줄기가 종횡으로 달려 산에 둘러싸인 골짜기나 평지는 하나의 자연적인 지리적 단위를 이루고 있다. 폴리스라는 소단위의 국가를 성립시킨 주요 원인. 

- 해안선의 굴곡 심하여 톱니 연상, 자연 바다로 진출, 본토에서 소아시아로의 항해 용이.

- 기후 건조, 더운 여름과 약간 냉기 도는 겨울의 두 계절, 겨울에 약간의 비, 여름에 비가 오지 않는다. 물 부족이 고민거리.

- 보리, 밀 곡물 재배 곤란, 건조하고 메마른 땅 적합한 포도, 올리브 재배 유리, 중요 농산품, 필수품, 수출품은 포도주, 올리브유

- 유리하지 않은 그리스 자연환경으로 일찍 해외 진출, 해외무역 종사

 

폴리스(Polis)의 성립

- 도리아족 남하로 미케네 문명 파괴, 그리스의 '암흑시대(1100~800 B.C.)' , 이 시기 생활, 사회 문서 없고

끝날 무렵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가 유일하게 약간의 정보 제공하기 때문에 이 시기를 호메로스시대(Homeric Age)라고도 한다. 

- 이오니아(Ionia) : 도리아족이  펠로폰네소스반도, 크레타 정착했을 때 이를 피해 이주 무리 일부 아테네 위치한 앗티카 지방에 모여들고, 일부는 소아시아 방면 이동, 이주민들 정착한 소아시아 해안지대, 인접한 섬들을 이오니아라 부름. 

미케네문명의 유산을 지닌 채 이주, 이오니아 지방이 오리엔트문화 접촉 용이한 곳으로 폴리스도 소아시아의 서해안지역에 먼저 성립하였다. 

- 도리아족 남하에 따른 혼란과 타국가의 위협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여러 촌락이 지리적, 군사적으로 중심이 되는 곳에 모여들어 도시가 형성되고, 그 도시를 중심으로 주변의 촌락들이 하나의 독립된 주권국가인 폴리스를 형성했다. 

- 대체로 해안으로부터 멀지 않은 평지에 위치, 도시는 폴리스의 정치, 군사 및 종교의 중심.

- 아크로폴리스(acropolis) : 성벽으로 둘러싸인 도시 안에 도시 위 수호신을 모신 신전이 건립된 작은 성체와도 같은 小丘.

  유사시 시민들 피난처, 침입자에 대한 항거의 최후거점

- 아고라(agora) : 아크로폴리스에 인접한 광장, 시장인 동시 정치를 포함한 모든 공공생활의 장소, 시민들 사교의 장.

- 종교적, 경제적 유대로 결합하고 법에 의해 규제되는 완전한 독립성과 주권을 가진 시민 공동체

- 고전기 본토에 200개 이상, 식민시까지 1,000개 이상 

- 그리스인들든 스스로 헬레네스(Hellenes)라 부르고, 헬레네스가 사는 곳을 본토와 식민시를 합쳐 헬라스(Hellas)라 했다.

- 폴리스들은 델피(Delphi)의 아폴로(Apollo)신전을 중심으로 인보동맹, 정치, 군사 동맹을 맺기도 하였다. 

-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서부, 올림피아(Olympia)의 제우스신전에서 기원전 776년 부터 4년마다 모든 폴리스가 참가하는 체전을 열고 그 기간 동안 폴리스 상호 간 전쟁을 금지

- 동족의식, 부분적 결합에도 불구하고 그리스 전체 통일 국가 형성하지 못하고 결국 폴리스라는 작은 도시국가 분립상태를 벗어나지 못함. 

 

식민활동과 사회의 변화 

- 폴리스 성립한 기원전 8세기 호메로스시대 왕들이  존속한 경우라도 실권없는 명목상의 존재, 정치권력은 귀족에게  

  따라서 폴리스 성립을 귀족정치와 연관시키려는 견해도 있다. 

- 귀족 신, 영웅, 왕의 후예임을 자랑하는 가장 유력한 씨족 출신, 기사로서 폴리스방위의 가장 중요한 존재

- 당시 미케네시대 전투 주역 담당하던 전차는 사라지고, 중무장 기사들의 1대1 싸움으로 전투양식 변화

 말 사육 많은 비용, 기사의 자부담, 감당 가능 귀족만 출전

- 가문과 혈통 자랑, 폴리스 방위 전사단 구성한 귀족 정권 장악, 주요관직 독점

- 평민 대다수는 클레로스, 분배지를 소유한 중소 농민(약간의 수공업자, 상인 포함)

- 기원전 8세기 시인 헤시오도스(Hesiodos)의 <노동과 세월> (Works and Days) - 농민 생활 생생 전달 귀한 자료

  당시 농민은 2,3명 노예 소유, 농번기 일꾼 고용해 농사 종사하는 자영농민

- 폴리스에서의 귀족 지배에 동요- 식민운동, 폴리스의 사회경제적 변화

- 기원전 8세기 중엽~ 2세기 해외진출, 식민운동 활발 - 북동쪽으로 다나넬스와 보스포러스 해협, 흑해연안, 지중해연안에서는 멀리 갈리아(지금의 프랑스) 남부, 에스파냐 해안까지 진출, 

가장 대표적 식민시- 프랑스의 맛실리아(지금의 마르세유), 시칠리아의 시라쿠사, 이탈리아의 네아폴리스 등을 포함한 마그나 그래키아, 보스포러스 해협의 비잔티움(로마시대 콘스탄티노플, 현 이스탄불)

- 흑해 연안, 나일강 입구, 에스파냐에 무역거점 건설

- 해상무역 왕성, 본토 내의 상공업 발전, 아테네-직물, 도자기, 금속세공품이 해외무역 주된 공산품

아테네산 독특 고급도자기는 멀리 메소포타미아, 갈리아, 에스파냐에까지 운반, 소규모의 가내공업으로 수행

- 기원전 7세기 소아시아의 리디아로부터 화폐 전해지고 상공업 발달 더욱 촉진, 본토 주된 도시국가들이 저마다 화폐 주조

- 아테네 라우리옹 은광, 국가소유, 개인기업가에 임대, 수천 명 노예 사역, 채굴방법, 제련 기술 매우 우수 

라우리옹 은광에서의 국가수익, 기업가의 소득은 아테네 군사력유지, 경제적 발전, 문화적 풍요에 크게 공헌.

- 해상무역과 교환경제 발달함 시장을 위한 대규모 과수재배, 대규모 경영의 발달, 소농에게 경제적 압박, 소작농, 농업노동자, 노예 전락자 다수, 도시의 평민들 귀족의 정치권력 독점에 불만 귀족정치에 도전

- 평민세력의 대두, 기원전 8세기말, 7세기 전반 중장보명의 밀집대가 종전의 귀족기사들 대신 전투의 중심

 청동제 헬멧, 흉갑, 정강이받이, 원형방패, 장검, 단검, 4열 이상의 두껍고 긴 밀집대를 이루어 전투

- 중무장의 비용 각자의 부담, 유산시민에 한정, 귀족만이 전투 주역 시대는 지나고 도시, 농촌 중산층 이상 유산시민이 국방 주력, 이런 전술 변화는 사회경제적 변화와 더불어 평민의 정치에 대한 발언권 증대.

 

귀족정치의 동요와 참주정치

- 아테네 귀족정치의 중심- 집정관인 아르콘(archon), 아레오파구스(areopagus) 회의.

  아르콘 군사, 종교, 민사의 3명에서 후에 9명 증가, 임기는 종신에서 1년, 임기 후 자동 아레오파구스회의 의원. 

  부유한 명문출신 귀족들로 구성, 귀족지배의 가장 핵심적 기관. 

  일반시민으로 구성되는 민회, 아르콘도 여기서 선출되었으나 실질 권한 없었음.

- 기원전 594년 아르콘으로 선출된 솔론(Solon) 아테네 당면 위기 극복 위한 개혁 단행, 부채 말소, 부채로 노예 된 자유민 해방, 부채로 인한 인신의 예속화 금지, 상공업 장려, 최하층에 민회 참석 권리, 새로 설치한 시민법정에 계층 구별 없이 추첨으로 참석, 각 부족의 100명씩 골라 4 백인회를 만들어 민회에 제출할 안건 마련. 

- 솔론의 개혁 귀족, 평민 모두 만족시키지 못하고 귀족 평민 사이 대립, 분쟁 재발, 내부 문제를 안은 채 인근 메가라와 싸워 살라미스를 획득- 최초의 대외전쟁, 최하층을 포함 시민 전체 참여에 의미. 

- 기원전 561년 이 전쟁의 군사지도자 페이시스트라토스는 빈농층포함 평민 지지 바탕으로 정권 장악, 참주(tyrant)가 됨.

귀족 추방, 토지를 빈농에 분배, 상공업 장려, 은광 개발, 시민 세금부담 감소, 귀족세력 크게 약화. 

트라키아 방면으로 진출, 흑해로부터의 식량공급로에 해당하는 섬들을 확보. 

- 참주정치: 사회경제적 변화와 전술의 변화로 귀족지배가 동요, 귀족과 평민의 대립과 분쟁이 격화 상황 이용, 비합법적으로 정권 장악 독재적으로 정치를 행한 것을 말하며, 결국 귀족정치로부터 민주정치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나타난 정치현상.

 

스파르타

- 도리아족인 스파르타 펠로폰네소스 반도로 남하, 기름진 라코니아에 정착할 때

  1. 페리오이코이(변두리사람 이라는 뜻) : 지배를 허용하고 종속적 지위 감수한 원주민은 자유신분이지만 시민권 없음

      도시, 주변 촌락 거주, 상공업 종사(스파르타시민에게 금지)

  2. 헤일로타이:  처음부터 예속적 신분, 완강 저항한 원주민은 노예신분, 할당한 분배지에 거주,

      스파르타시민에 비해 훨씬 많은 절대다수, 반란의 위험, 감시의 대상.  

- 두 차례 메세니아 전쟁(725~705 B.C)(640~620 B.C.) 영토확장을 위한 정복전쟁, 스파르타의 가혹한 지배에 반란

 전쟁 후 메세니아 주민 대부분을 헤일로타이로 만들고 토지를 스파르타 시민에 분배

- 실권 없는 두 사람의 왕과 장로회( 두 왕 포함 30명의 유력한 가문 출신 구성)가 국정의 중요안건 마련, 민회의 승인 절차

국정운영의 실권은 민회가 선출하는 임기 1년의 5명의 에포르(ephor)=집정관, 원 임무는 왕을 포함한 여러 관직자의 행동 감시, 스파르타 특유의 생활양식 준수 여부 감시하는 감사관의 기능도 겸유. 

- 왕정과 귀족정치의 유제를 내포한 민주정치, 전형적인 중장보명 민주정

제2차 메세니아전쟁 전 중장보병의 밀집대 전술 도입, 성년남자시민 전원이 분배 지를 가진 동등자로서 준장보병의 의무

- 완전한 시민권을 가진 스파르타시민은 주민전체의 5~10% , 교육, 전시체제 조직의 스파르타 독특 생활양식 유래

- 탄생 후 심사 거쳐 허약 버림받고 건장한 아이만 성장, 7세부터 집단훈련(신체단련, 군사훈련), 여아도 엄격 훈련,

20세부터 성인 ~30세까지 병영생활, 이후 시민전사단 소속 특수 집단생활, 저녁마다 집단별 공동식사 참여. 

시민 생산업 종사 금지, 외국 무역 억제, 자급자족 원칙, 외국인 왕래 감시, 폐쇄적 쇄국주의 

- 강력한 군대의 힘으로 펠로폰네소스반도 대부분의 폴리스를 망라한 펠로폰네소스동맹 결성( 560 B.C) 패자 군림했으나

  그리스문화에는 직접적으로 아무런 공헌도 하지 않았다. 

 

 

민석홍, 제2판 서양사개론, 삼영사, 2006, pp5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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