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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기 : 체제 정립기

 

왕권 주도론과 재상권 주도론의 대립

고려말 권문세족을 비판하면서 신흥사대부 대두

전지(田地)와 양인·농민을 과도하게 차지하여 국가재정 허약 문제를 과전법 제정으로 해결하려 함

사회경제적 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신흥사대부는 두갈래로 나뉨

* 정치체제(왕조 변경)까지 주장하는 급진개혁파 vs 왕조 유지를 주장하는 온건개량파

급진개혁파(정도전)와 신흥 무장집단세력(이성계)에 의해 조선 건국(1392)

재상(宰相) 중심의 정치체제 주장세력과 왕실 중심의 정치체제 주장세력

(고위 관료직 차지한 급진 개혁파의 중심인물들) VS (이방원 중심의 왕실집단)

- 조선 초기의 정치사는 왕권주도론과 재상권 주도론의 대결

- 1398(태조7) 왕자의 난: 이방원측이 정도전 등 공신집단 제거, 주도권장악

태종의 왕권강화 : 의정부서사제 폐지, 육조직계제 시행, 승정원과 의금부 설치

왕명 재위기간
1 태조(太祖, 1335~1408) 1392~1398
2 정종(定宗, 1357~1419) 1398~1400
3 태종(太宗, 1369~1422) 1400~1418
4 세종(世宗, 1397~1450) 1418~1450
5 문종(文宗, 1414~1452) 1450~1452
6 단종(端宗, 1441~1457) 1452~1455
7 세조(世祖, 1417~1468) 1455~1468

세종 재위기간 정국안정 : 집현전 확장정비로 관료 양성, 의정부서사제 부활

 

왕권 주도론의 정착

문종, 단종 재위기간 : 국왕 국정 운영 주도권 약화, 재상권 강화

계유정난(1453) : 세조의 정국운영 주도권 장악한 사건

세조의 왕권강화 : 육조직계제 부활, 집현전 폐쇄,경국대전편찬 시작

경국대전1466(세조6) ~ 1485(성종16) 을사대전으로 최종 반포·시행

경국대전의 완성은 조선의 정치체제가 정립되었음을 의미.

1454 성종15 경국대전반포  
1746 영조22 속대전반포  
1785 정조9 대전통편편찬  
1865 고종 대전회통편찬 조선시대 마지막 법전

 

왕권 주도론과 재상권 주도론의 절충

•《경국대전: 왕 중심의 행정 실무와 정국 운영(왕의 지위, 하는 일 미규정)

계유정란 공신세력인 훈구파의 형성과 이들의 관권장악, 권력남용 등 부패

훈구파 견제를 위한 성종의 사림파 등용과 두 세력 간의 갈등 고조

언관직 맡아 언론 활동 통해 훈구파 비판, 국왕이 정상 왕권 행사 했던

성종대는 훈구파, 사림파 적절히 조정, 균형있는 국정 운영

왕명 재위기간
8 예종(睿宗, 1441~1469) 1468~1469
9 성종(成宗, 1457~94) 1469~1494
10 연산군(燕山君, 1476~1506) 1494~1506
11 중종(中宗, 1488~1544) 1506~1544
12 인종(仁宗, 1515~1545) 1544~1545
13 명종(明宗, 1534~1567) 1545~1567
14 선조(宣祖, 1552~1608) 1567~1608

 

조선 중기 : 사화와 붕당정치

 

사림파의 중앙정계 진출과 붕당의 출현

사화(士禍) : 사림파의 비판에 훈구파가 정치적으로 보복을 가한 사건

국왕의 통제력이 정상적이지 않던 연산군~명종 재위기간 중 4대 사화 발생

* 무오사화(연산군 4), 갑자사화(연산군 10), 기묘사화(중종 14), 을사사화(명종원년)

사림파는 50여년간 중앙정계 진출 및 결국 정국 주도권 장악

붕당의 출현 : 을해당론(1575, 선조 8)에 사림세력이 동인과 서인으로 분기

* 왕권 약화와 현실 정치에서 국왕이 국정운영에 역할을 하지 않게 된 것에서 영향

조선중기(성종, 연산군, 중종, 인종, 명종, 즉위초 선조) 왕권이 약화, 국왕들의 역할 미미

삼사(三司) 언관직에 대한 인사권을 가진 이()조 전랑직을 놓고 붕당 간 대립

 

붕당의 심화

구 분 출신 훈구 척결 지지인물 정책적 이념 학파적 성향
동 인 신진사림 강경입장 김효원 · 치자(治者) 강조
· 도덕적 자기절제를 통한 부패방지
이황, 조식,
(영남학파)
서 인 기성사림 온건입장 심의겸 · 치인(治人)에 중점
· 제도개혁을 통한 부국안민 추구
이이, 성혼
(기호학파)

정여립 모반사건이 원인이 된 기축옥사(1589, 선조 22)로 동인 대거 축출

과도한 조처였다는 반발을 사 역으로 동인이 정국 주도권 잡음

건저의사건(1591, 선조 24): 왕세자 책봉을 둘러싼 분쟁 으로 동인 집권

정철 처리문제에 대한 이견으로 동인 세력이 남인·북인으로 분기

* 서인 문제를 두고 강경파는 북인(조식 계열), 포용하려는 온건파는 남인(이황 계)

유성룡 탄핵(1598, 선조 31)후 북인 정권장악, 북인 세력이 다시 대북·소북으로 분기

* 대북은 광해군을 지지하는 주로 노성한 인물, 소북은 영창대군을 지지하는 연소한 인물

광해군 집권기간 대북이 정국장악(임진왜란 간 의병활동, 주전론 주장으로 가능)

1610(광해군3) 대북의 회퇴변척(晦退辯斥: 문묘 종사 이언적과 이황을 문묘에서 배제) 실패, 주도자 정인홍 유생자격 박탈

1614(광해군7) 광해군과 북인은 영창대군 죽이고 선조 계비, 영창대군 생모 인목대비를 서인으로 격하해 서궁으로 유폐

인조반정(1623)으로 서인 집권, 광해군과 북인 몰락

* 서인주도 + 남인 일부 연합, 국정운영 동반

병자호란 이후 청 관계를 두고 주화론과 척화론 대립

효종 재위기간 북벌정책 추진, 서인계열의 척화파 정국장악

* 효종대에는 국왕이 국정을 주도하면서 실무형 관료들의 역할증대, 붕당의 역할 미약

현종 재위기간 2차례의 예송논쟁으로 서인과 남인 간 대립

* 기해예송(1659 현종원년) 효종 승하시 자의대비(인조의 계비) 상복 : 서인 정국장악

효종 둘째 아들 가벼운 복을 입어야 한다(서인) VS 왕위 승계는 곧 장자 무거운 복(남인)

왕명 재위기간
15 광해군(光海君, 1575~1641) 1608~1623
16 인조(仁祖, 1595~1649) 1623~1649
17 효종(孝宗, 1619~1659) 1649~1659
18 현종(顯宗, 1641~1674) 1659~1674
19 숙종(肅宗, 1661~1720) 1674~1720
20 경종(景宗, 1688~1724) 1720~1724
21 영조(英祖, 1694~1776) 1724~1776
22 정조(正祖, 1752~1800) 1776~1800

* 갑인예송(1674 숙종원년) 효종비 승하시 자의대비(인조의 계비) 상복 : 남인 정국장악

 

조선 후기 : 환국과 탕평정치

 

환국(換局) - 숙종 재위기간

환국 : 정국 주도집단과 견제집단이 급격하게 뒤바뀌면서 정국이 전환 현상

붕당 간 상호 견제, 비판 기능이 약화되고 상대방에 대한 배제 성향 강화

정국운영 중점이 붕당에서 국왕으로 이동(국왕 중심의 탕평정치로 이행하는 과)

상품 유통 활발, 화폐 통용, 신분제 변동, 향촌사회 변화 등 사회변화로부터 영향

1674 갑인환국~ 1728(영조4) 무신란까지 50여 년간 9차례 발생

경신환국(1680, 숙종 6) 남인 탁남측 병권 장악 기미, 숙종이 남인 축출 서인진출

* 남인 처벌문제를 둘러싸고 노론(강경파, 이이계)과 소론(온건파, 성혼계)으로 분기

기사환국(1689, 숙종 15) 희빈장씨 소생 세자책봉 문제로 발생 ,남인 정국장

갑술환국(1694, 숙종 20) 1694년 폐비 인현왕후 복위 문제로 발생, 인 정국장

* 남인은 재기 불능상태로 전락

무고의옥으로 희빈 장씨 사사(1701, 숙종 27)으로 노론 정국장

숙종은 집권 초기 탕평을 표방하고 붕당을 부정했지만, 집권 후반기에는 붕당 간

대립이 왕위 계승문제로 변화되면서 양보할 수 없는 대립 양상으로 비화

* 왕위 계승문제로 붕당의 대립은 왕권에 대한 근본적 위협으로 작용

경인환국(1710, 숙종 36), 병신환국(1716, 숙종 42), 신임환국(1721, 경종1~1722),

을사환국(1725, 영조1), 정미환국(1727, 영조3), 무신란(1728)

노론·소론 간 정국주도권 쟁탈, 무신란 이후 영조 붕당 부정, 노론과 소론 중 논의 온건한 자들을 균등 등용 자신이 정국을 주도하는 탕평책을 추구, 환국 발생하지 않음

 

탕평(蕩平) - 영조, 정조 재위기간

붕당 타파를 표방하면서 정치집단 사이의 인위적 균형 모색

국왕이 정치 운영방향 제시, 또는 관료의 건의를 선택하는 등 방법으로 국정 주도

분쟁을 중간에서 화해하거나 타협점을 찾는 것

영조는 조제보합(調劑保合)을 핵심으로 하는 완론탕평 추구 : 경연 활성화

* 왕권 강화 + 측근 세력 양성

영조대학》《정관정요등 군주권 강조 책 교재 채택 경연 주도

* 규장각 설치로 신진관료 육성, 비변사 기능 강화, 중인,일반민 위한 신문고 설치,

상언·격쟁 활성화, 혹독한 형벌 금지, 1746(영조22) 속대전 간행 반포.

* 국왕 자신이 백성의 어버이로 국정운영의 중심으로 인식

붕당 타파, 외척을 포함한 기득권 집단을 제거해 왕권 강화 국왕에 권력 집중 정조의 탕평 : 의리와 원칙 고수 준론탕평 표방, 붕당 타파, 기득권집단

제어 왕권 강화 방향, 규장각(왕립 도서관,연구소) 설치, 대전통편 편찬,

장용영 신설 군문 통일, 병권장악, 화성 축조 지방 지배 강화, 신해통공 실시 상업활성화 , 상언,격쟁 활성화, 서얼 청직에 진출 허용, 노비추쇄법 혁파

 

조선 말기 : 세도정치

 

정조의 급작스러운 승하로 국왕 중심의 정치권력이 일시에 붕괴

서울에 기반을 둔 소수의 유력한 가문에 의해 국정주도권 좌우

* 안동 김씨, 풍양 조씨, 반남 박씨, 대구 서씨, 연안 이씨, 풍산 홍씨 등

세도가문 중심의 권력구조 변화

고위관직의 정치 독점(2품 이상 고위직만 정치적 기능 발휘)

비변사에 권력 집중, 공식적으로 국가권력에 개입(비변사 요직도 세도가문이 독점)

세도정치의 폐단 대두

사익만을 추구하고 사회문제 방치로 민생 피폐

홍경래의 난(1811, 순조 11), 임술민란(1862, 철종 13) 등 민중 봉기

순조~ 근대의 기점이 되는 1876년 개항 까지 조선후기와 구별 - 조선말기

고종 즉위(1863), 흥선대원군의 실권 장악 세도정치 타파에 국정운영 집중

1876(고종13) 강화도조약, 개항

 

홍순민외7명, 『 조선시대사 1- 국가와세계 , 푸른역사(한국역사연구회시대사총서05),  2022, pp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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