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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 살면 충주사람' 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배려와 소통이 되는 문구로 참 좋다.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이 문구 하나로 많은 분이 '충주에 거주하는 사람',' 충주로 온 사람'에서 마땅히 '충주사람'이 되었을 것이고 누구에게도 공감을 불러내기에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드러난 '말의 힘'과 그 말을 탄생시킨 '생각하는 힘'을 새삼스레 생각해 보았다. 

그러니 어떻게 살아야 할까...

 

충주에 사는 사람들이 소통하는 인문학 스터디, '여해 인문학 스터디' 2번째 모임이 있었다.

7월은 본격적 장마철이 시작되어 장맛비 속에 참여를 해주셔야 하는 상황이라 주인장으로서 송구한 마음이 크다.

귀한 초등학생 손님들은 아쉽게도 학원 시간 때문에 참석을 못 했지만 회원님들과 충주문화해설사 선생님들의 격려와 적극적인 참여에 절로 힘이 솟는 것을 느낀다. 

권혁분, 이주화 선생님에 이어 이상숙 문화해설사 선생님, 충주 전통문화원 표영춘원장님 께서 처음 참여해 주셨다. 

참석자(존칭 생략): 임원빈, 오희연, 김경은, 박동수, 김명란, 이영선, 권혁분, 이주화, 이상숙, 표영춘 (10명) 

 

오늘도 제대로 된 역사와 그를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 그리고 이순신 장군과 현대의 가교역할을 위해 기꺼이 달려와 주신 임원빈 교수님의 강의는 다음과 같다. 

조선 임진왜란 시기 충주는? 일본의 소서행장(고니시) 장수가 병력 1만2~3천명을 이끌고 부산에서부터 상주, 문경, 수안보, 단월로 들어와 벌어지는 전투가 탄금대 전투로 임진왜란과 무관하지 않다. 

탄금대 전투는? 신립장군은? 예전과 다르게 모르는 학생들이 많은 요즘 현실. 

패전한 전투에 대해서는 후진국 상황에서는 패전은 감추려는 경향이 있고 승전은 부각하려는 경향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와 같은 태도가 없지 않아서 이제는 승전도 중요하지만 패전 또한 중요하므로 그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 

- 왜 졌을까? 다시는 이런 상황이 되면 결단코 패배하면 안되지. 패배하지 않기 위해서는 패배 이유를 정확히 알아야지. 

- 이순신 장군의 전승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 이유를 알아야지, 단순히 승리해서 훌륭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이겼지?

어떻게 이순신 장군은 모든 해전을 승리로 이끌었지? 똑같은 조선 수군을 이끌었는데 왜 원균의 수군은 칠천량 해전에서 전멸에 이르렀을까? 

- 충주도 패전에 대한 소극적 자세에서 더욱 적극적 자세로 전환이 필요하지 않을까?

( 경남에는 칠천량 전투 기념관 설립되어 역사지식을 향상하고 유비무환의 교훈을 적극적 홍보하고 있음) 

 

* 탄금대 전투(彈琴臺戰鬪) :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신립(申砬) 장군을 주장으로 한 조선군이 왜군과 충주에서 벌인 전투 (충주전투라고도 한다) 

1592년 4월 부산에 상륙한 일본군이 대병력으로 쳐들어오자 조정에서는 북방 방비에서 큰 업적이 있었던 명장 신립 장군을 삼도순변사(三道巡邊使)로 임명하여 막게 했다. 신립 장군이 충주에 도착한 뒤 4월 24일 부장 몇 사람과 조령(鳥嶺)에서 형세를 살필 때, 종사관(從事官) 김여물(金汝岉) 등이 “적은 군대로 왜적의 대군을 방어할 곳은 마땅히 지형이 험한 조령뿐이다.”고 하였다. 그러나 신립 장군은 그 말에 따르지 않고 “이곳에서는 기병(騎兵)을 쓸 수 없으니 마땅히 평원에서 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26일 그는 드디어 충주의 서북 4㎞ 지점에 있는 탄금대에 배수진을 쳤으나, 앞에 논이 많아 말을 달리기에 불편하였다.

27일 고니시(小西行長)가 거느린 왜군은 이미 조령을 넘어 단월역(丹月驛)에 이르렀다. 이에 충주목사 이종장(李宗長)과 순변사 이일이 척후로 나갔지만, 적군에게 길이 막혀 신립은 적정(敵情)을 정탐할 수 없었다.

28일 새벽 왜군은 부대를 나누어 본진은 충주 성에 돌입하고, 좌군(左軍)은 달천(達川) 강변으로 숨어 내려왔으며, 우군(右軍)은 산으로 숨어 동쪽으로 나가 강을 건넜다. 신립은 당황해 충주성으로 급히 말을 달렸으나, 군대의 전열이 미처 정비되기도 전에 성안의 왜군이 나팔 소리를 신호로 일제히 출격, 조선의 관군은 대패하였다.

신립은 탄금대로 돌아와 부장 김여물과 함께 적병 수십 명을 사살한 뒤, 강물에 몸을 던져 자결하였다. 충주의 사민(士民)과 관속은 아군을 믿고 피난하지 않아 왜군에게 희생된 사람이 다른 지방보다 많았다. 신립의 패보(敗報)가 조정에 전해지자 민심이 극도로 혼란해지고, 국왕은 서울을 떠나 평안도로 피난하게 되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탄금대 전투(彈琴臺戰鬪)의 의의

  - 임진왜란 시작된 후 최초의 대규모 야전

  - 사실상 전투는 중반까지는 충주천 이남 달천평야에서 벌어졌고, 전투 후반에 신립이 탄금대에서 최후를 맞이했기 때문에탄금대 전투라는 이름이 붙었다. (전투가 처음부터 끝까지 탄금대 인근에서 벌어진 것은 아니다)

  -  한일 전쟁사에 있어 드문 정규군의 대규모 전투 (조선이 동원할 수 있는 가장 많은 병력을 동원)

  -  조선 최고의 명장 신립과 일본군 선봉장 고니시 유키나가(소서행장)의 대결

  -  기병 vs 보병의 전혀 다른 병종 구성

  -  기마전술 vs 조총 전술의 첫 대결

    (일본 본토에서 도요토미히데요시 조총부대가 전국 통일할 때 같은 구도였으며 그 경험을 바탕으로 위력을 발휘함) 

  -  활 vs 조총 주력무기도 다름

 

이어서 1회 내용을 리뷰해 주셔서 차근히 다시 듣고 정리하는 시간이 되어 개인적으로 참 좋은 시간이었다. 

(이순신의 어린 시절을 통해서는 동네 친구, 형님을 잘 사귀어야 한다는 것과 젊은 시절을 통해서는 장가를 잘 가야 하며 문과 공부이력과 뛰어난 문장, 문체력을 선조가 알아봄을 통해서는 글씨만 잘 써도 (실기 하나라도 잘하면?)  성공할 수 있다)

새로운 시각인듯 조금은 어긋난 시각인듯 싶지만 꼭 틀린것만도 아니니...

 

본 사업의 취지와 앞으로 스터디를 이어갈 계획에 대해서 말씀 나누고 참여해주신 선생님들의 소감을 들으며 마무리했다.주인장의 딴짓, 집 밖 문지방3 사업을 통해서 귀한 시간, 귀한 인연 만들어 갈 수 있어서 감사하고 또 어떤 소통과 연결고리가 생겨날지도 몹시 기대되는 작지만 결코 작지 않은 모임을 돌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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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 살면서 충주사람이 된 지 9년이 되었다. 정신없이 지나는 시간 동안 무수히 많은 이야기도 함께 흘러가는 중이다.

수많은 일들... 많은 생각과 감정들... 중요하든 중요하지 않든  나름대로의 의미는 충분히 쌓여간다. 

 

국악 전공자로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만나게 되었고 관심을 두고 이리저리 기웃기웃 귀동냥에 나름 공부를 시작한 지 꽤 되었다. 

 

누구나 아는 인물,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인물, 풍전등화의 조선을 온몸과 마음으로 진심 전력하여 보전하고 만백성을 위기에서 탈출시키며 피비린내 전쟁의 역사를 치열하게 살아내신 인물.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인품과 충절, 효심, 지성에 감복해 그를 따르고자, 제대로 알아보고자 시작한 공부이다.

명석하지도 부지런하지도 못한 탓에 아직도 쭈뼛대는 속마음이 크지만 관심과 의지만큼은 타의추종을 불허한다. ㅎ   

 

2023년 중원문화재단 집 밖 문지방3사업에 의지해서 여해 인문학 스터디를 개최하여 역사 공부에 관심 크신 선생님들을 모시고 소통하는 모임이 시작되었다. 총 5회의 모임이지만 큰 공부의 마중물은 충분하고도 남음이 있으리라 믿는다.

이 블로그의  첫글도 이로써 시작하려 한다. 

중원문화재단은 충주에 있는 문화재단으로 충주시민을 대상으로 여러 문화사업을 하는 곳이다.  마침 충주 시내에 있는 공간을 활용해서 '주인장이 딴짓을 할 수 있는' 사업이 있다길래 벼르고 있다가 다행히 지원, 선정되었다. 

 

이곳은 '충주 전통예술원'으로 충주 시내에 있는 전통 음악(국악)전수소다. (국원대로 156 2층)

오희연 대표님은 사) 서도소리보존회충북지회 지회장, 김경은 주인장은 국가무형문화재 제41호 가사 이수자로 활동하고 있는 국악인이다.  이 두 국악인의 딴짓은 바로 역사 속 '충무공 이순신 장군 공부'이고 이 딴짓을 7년째 이어오고 있다.

그렇게 공부를 열심히 해오면서 2022년 국악 최초 이순신 장군 관련 창극 '이순신의 노래' 를 충주에서 개최했고 전국에서 관련 전문가, 연구가분들께 큰 관심과 성원을 받은 바 있다. 

 

'여해 인문학 스터디' 는 말 그대로 이순신 장군과 관련된 역사 스터디다. 충주는 임진왜란 당시 가슴 아픈 패전의 전장지로 신립장군의 탄금대 전투가 있는 곳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이 스터디의 핵심 포인트가 있음을 꼭 기억해야 한다. 패전의역사라고 해서 무조건 부끄러운, 수치스러운 기억의 역사에 머물러서는 안 되는 지점을 말이다. 주인장 역시 전혀 이 개념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다행히 이순신 공부를 하며 특히 임원빈 교수님 강의를 들으며 중요한 개념들을 가질 수 있었다. 역사의 사실들을 기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이면에 숨어있는 중요한 포인트를 놓치지 않을 수 있는 '관점'에 관하여....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다른 관점의 시각은 실로 많은 것을 바꿀 수 있으리라 믿는다....여해 인문학 스터디 시작의 의미는 바로 이점에 있으며, 임원빈 교수님의 적극적 지원사격은 실로 스터디의 최고봉, 따봉이 아닐 수 없다. 

 

임원빈 교수님은 충주가 고향이시고 살고 계시는데 순천향대학교 이순신 연구소 소장님으로 오래 근무하셨고 현재는 대구카톨릭대학교 이순신학과 교수님으로 '이순신 리더십' 분야에서는 단연코 대한민국 최고의 전문가시다. 아이러니하게도 전국의 이순신장군 관련된 각종 학회, 세미나, 행사, 강의에 참석하시지만 충주에서는 거의 활동이 없으셨는데 이번 모임의 기회는 새삼스럽기도 하고 낯설기도 하신 듯하다. 

 

모임 첫날임에도 많은 분이 참석해주셨다. 임원빈 교수님, 오희연 대표님, 김경은 주인장, 박동수 사무국장님, 김명란 대표님,이영선 선생님, 권혁분 충주문화해설사 선생님, 이주화 충주문화해설사 선생님과 남산초등학교 김민규, 이주영,이하영,이시영 4명의 초등학생과 학부모님 모두 15명 출석으로 스타트! 

 

먼저 중원문화재단 사업의 취지를 설명하고, 참여자 소개, 앞으로의 일정을 공유하고 임원빈 교수님의 강의, 강의~ 

특별히 초등학생들을 위한 눈높이 강의에 맘 편하고 즐겁게 강의를 들으며 질문하는 시간이 되었는데 특히 충주문화해설사 선생님들께서 스터디도, 강의도 굉장히 좋다고 하시고 적극적 홍보하시겠다고 하시며 힘을 보태주셨다. 

수준 높은 임 교수님의 강의가 첫 번째 혜택이라면 특별한 혜택 두 번째는 노승석 박사님께서 번역하신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 책을 무료로 나눠 드리는 건 안 비밀! (필요한 분에게는 충주의 충무공 이수일 장군 자료집도 준비했습니다. )

그리고 임원빈 교수의 '임진년, 다시 쓰는 이순신전' 자료 프린트.

 

여해 인문학 스터디 첫 모임의 강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이순신 장군은 누구인가? 2. 이순신 장군은 어디서 나고 자랐을까? 3. 충남 아산의 이순신 유적 4. 소년 이순신

5. 소년, 청년 이순신은 어떤 공부를 했을까? 6. 이순신 장군이 승전 7. 어떻게 하면 이순신 장군 같은 리더가 될 수 있을까?

 

우리는 이순신 장군 하면 필요에 따라 한없이 영웅화하고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여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크기에

그가 왜 진정으로 위대한지 그의 리더십이 왜 뛰어났는지를 차근차근 알아보고 역사 속 오늘을 잘 살아갈 수 있기를 희망한다. 어린 친구들에게도 어른에게도 누구에게나 꼭 필요한 공부로 더욱 널리 알려지기를, 흥미로운 영화나 드라마, 소설을 보고 읽으며 잘된 것과 잘못된 것을 알 수 있기를, 나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나와 꼭 같은 사람이었음을... 

 

 '여해=이순신의 字'  <서경 書經> 에서 순임금이 우임금을 지목하며, "오직 너 여야 세상을 화평케 하리라" (제왈무유여해)고 말한 대목에서 유래되었다. 

이순신장군님의 자는 '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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