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한 주 전 3차 강의 리뷰를 시작으로 여해 인문학 스터디 4차 모임이 시작되었다. 최근 이순신 관련 영화에서부터 이순신 )장군 동상이 시사하는 바를 생각하고 그리고 임진년 총 4차 출동 (1차 출동: 옥포, 합포, 적진포 해전), (2차 출동: 사천, 당포, 당항포, 웅포 해전), (3차 출동: 한산 해전, 안골포해전), (4차 출동: 장림포, 화준구미, 다대포, 서평포, 절영도, 초량목, 부산포 해전)의 상황표를 보며 '이순신 장군은 우세한 상황을 만들어 놓고 싸웠다' 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실 개인적으로 몇 년 전 어느 기회에 임 교수님의 임진년 출동 상황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는데 머릿속이 확 깨어나는 느낌이 들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리고 임교수님의 강의를 몇차례 들으면서 왜 역사와 철학이, 음악과 철학이, 모든 학문과 철학이 연결되어야 하는지 어렴풋이 짐작이라도 하는 계기가 되었다.  

 

4차 모임에는 문화해설사 정기화 선생님, 김인동 선생님, 전 준 선생님, 김혜량 회원이 처음 참여해 주셨다.

참석자(존칭 생략): 임원빈, 오희연, 김경은, 박동수, 김명란, 이영선, 김혜량, 권혁분, 이주화, 이상숙, 정기화, 김인동, 표영춘, 연경연, 엄대진, 전 준(16명)  

 

이 모임의 취지와 수준 높은 강의를 알아봐 주시고 적극적 홍보와 만족도를 보여주시는 선생님들께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  주인장에게 잘했다 칭찬해주시는 것과 다름이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 중 큰 성과라고 한다면 충주문화관광해설사 선생님들께서 관심을 가져주셨다는 것인데 워낙 역사 공부를 많이 하는 선생님들을 사실 개별적으로라도 만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 장마철에 바쁘신 중에 짬을 계속 내주시니 그저 감사드릴 뿐이다. 충주에는 20여분의 문화관광해설사 선생님들이 계시는데 이 모임에는 1회부터 4회까지 총 6분의 충주문화관광 해설사 선생님들께서 참여해 주고 계신다. 이 사업과 별도로 이후 자체적인, 지속적인 스터디 의견에 동의도 해주셨다. 선생님들의 역량 강화에도 도움을 받으실 수 있겠지만 충주에 관해 어느 누구 보다 많이 알고 계시는 선생님들을 통해 보다 진~한 충주사람이 될 수 있을 것도 같다. 

 

자~각설하고 4차 모임의 강의를 복기해 보면 다음과 같다. 임원빈 교수님은 강의 동안 여러 질문을 던져주시는 데 그 중 

중요한 질문은 다음과 같다. 1. 일본의 함선 척수가 훨씬 많을 텐데, 구체적인 해전 국면에서 어떻게 조선의 함선 척수가 더 많을까?  2. 이순신 장군이 아무리 탁월한 리더라 해도 어떻게 한척도 격파당하지 않고 적선 330척을 격파할 수 있었을까?

(임진년 제1차~4차 출동에 걸쳐 전체 조선 수군이 격파한 함선 수는 약 330여척)  

 

정답은 '조선 수군은 세계 최고의 전투력을 보유한 군'이라는 것이다. 일반 상식과 크게 다른 점이 아닐 수 없다. 

당시 조선은 준비되지 않은 전쟁에 닥쳐 모든 것이 열세였을 것이고, 그래서 20일 만에 전국이 초토화되지 않았던가 ㅜ.ㅜ 

세계 최고의 전투력을 보유했던 수군이라는 것이 과연 맞는 말일까? 아이러니하고도 흥미진진한 스토리가 분명하다.

일본은 섬나라로 바다에서 싸우는 수군력이 막강한 것이 아니었었나? 당시 조선은 전쟁 준비가 없었다고 알고 있는데?

일본 함선도 어마어마하게 많이 쳐들어왔을텐데? 최악의 열세 상황에서 일본에 맞서 싸워 이긴 구국의 영웅, 피눈물의 영광이 아니었던가 말이다. 상식이 깨지는 순간...

이순신 장군의 탁월한 리더십 역량 이외에 다른 요소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무기! 대형 화학 무기, 함포

조선수군이 일본 함선을 격파할 수 있는 무기를 지닌 반면 일본 수군은 조선수군의 배를 격파할 무기가 없었다!

 

* 조선의 화약 무기 : 우리 민족의 화약 무기는 고려 말 최무선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최무선은 화약을 이용한 화포를 만들어 진포대첩에서 왜구를 무찔러 승리했으며 그의 아들 최해산은 조선시대 아버지 최무선의 뒤를 이어 화약 전문가가 되었다.  태종과 세종 때 조선의 화약 무기들을 개발하는 일을 맡았음. 최해산은 주로 화살을 쏘던 화약 무기들을 돌이나 쇠로 만든 탄환을 쏠 수 있도록 바꾸고 한 번에 수십 개의 화살을 쏠 수 있는 화차도 개발했다. 

  세종 때 가장 많은 화약 무기가 개발되었는데 당시 만들어진 화약 무기들은 1592년 임진왜란 때 큰 활약을 하게 된다. 

 

- 천자총통(길이 136Cm)

- 지자총통(길이 89Cm)

- 현자총통(길이 79Cm)

- 황자총통(길이 50Cm)

- 승자총통(길이 58Cm)

- 신기전기 화차

- 총통기 화차

- 대장군전

 

- 비격진천뢰 : 조선의 비밀 병기, 일본이 조선 침략을 준비하고 있을 무렵 조선의 화포장이었던 이장손은 비밀리에 포탄 하나를 개발, 임진왜란 일어나기 직전에 비격진천뢰를 완성했다. 폭발할 때 하늘을 진동하는 소리를 낸다고 하여 이름 붙였다. 이전의 포탄은 날아가 적선이나 성벽을 깨부수는 역할을 했지만 이장손이 개발한 비격진천뢰는 포탄 내부에 설치한 대나무 통 안에 점화선을 감아 놓아서 탄환이 날아가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터지게 되어있다. 일종의 시한폭탄...

포탄을 빨리 폭발시키려면 점화선을 10번 감고, 늦게 폭발시키려면 15번을 감았다. 포탄 속에는 날카로운 쇳조각들도 들어있어 폭발과 함께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비격진천뢰는 점화선에 불을 붙여 손으로 던지기도 했지만, 주로 '완구'라는 총통을 사용했다. 대완구를 사용하여 발사하면 포탄이 500~600보 정도 날아갔으며 적진 속에서 굴러가다 강한 폭발음과 함께 터졌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이 가장 무서워했던 무기가 바로 비격진천뢰였다고 하는데 비격진천뢰를 처음 본 일본군들은 포탄 주변에 모여 구경하다 폭발과 함께 죽기도 했다고 한다. 그들 대열의 한가운데를 굴러가다 강한 폭발음과 함께 터지는 폭탄의 위력에 크게 겁을 먹고 일본군은 비격진천뢰를 '귀신폭탄'이라 부르기도 했다. 진주대첩, 행주대첩, 한산도대첩등 여러 전투에서 사용되었다. 

 

- 대완구(길이 65Cm)

 

  조선 수군은 멀리 있는 적선을 향해 큰 쇠 탄환이나 장군전을 쏘았으며, 적선이 장군전을 피해 조선의 판옥선에 가까이 오면 조란환을 총통으로 쏘았다. 지자총통에는 200여 발, 현자총통에는 100여 발의 조란환을 넣어 한꺼번에 발사!

조선 수군의 총통은 일본군 조총보다 더 멀리 쏠 수 있었고 동시에 많은 탄환을 쏠 수 있었던 만큼 성능이 좋았다. 이렇게 총통을 효과적으로 사용한 것이 승리의 주요 요인 중 하나이다. 

 

 일본 수군의 해전 전술은 원거리에서 조총이나 활을 쏘고, 근거리에서는 빠르게 적군의 배에 올라타서 일본의 장기인 칼싸움을 벌이는 것이다. 즉 조총 전술로는 인명 살상은 가능하지만 조선 수군의 배를 격파할 수 없고 임진년( 1592 ) 첫 해기간 일본 함선 330여척이 격파된 데 비해 조선 함선이 단 한 척도 격파되지 않았던 전적, 해전 양상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당시 해전에서 일본 수군은 조선 수군의 함대에 올라 오지 못했다= 백병전을 하지 않았다. 

 

따라서 중간 결론은! 조선 수군은 일본군보다 훨씬 막강한 첨단 수군이었다!  

그리고 이순신의 완벽한 승리는 바로 이러한 세계 최고의 질적 전투력을 보유한 조선 수군을 말그대로 영끌해서? 열세의 상황을 우세한 상황으로 만들어 버린 탁월한 리더십에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임원빈 교수님은 이러한 우세한 상황을 만드는 것이 병법의 요체라고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우리보다 수적으로 열배나 많은 열세한 상황을 어떻게 우세한 상황으로 만들 수 있었을까? 또다시 던지신 질문이었다. 

조선 수군에 대한, 영웅에 대한 일반 상식이다 시피 한 개념을 하나씩 하나씩 증거와 논리로 분석해서 떠먹여 주시니 꼭꼭 씹어서 잘 받아먹고 소화를 잘 해서 좋은 에너지로 만들어야 할 텐데.. 이렇게 해서 우리의 역사를 일부라도 복원시킬 수 있는 힘을 보탤 수 있다면 참으로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 싶다. 

 

훌륭한 리더의 조건 첫 번째는 바로 실력!

자신이 속한 조직의 직무 지식에 정통하지 않고는 절대로 좋은 리더가 될 수 없다....다음 강의 예고편...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