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3. 새로운 전쟁 방식과 무기

  

  센고쿠 다이묘는 부국강병의 기반이 되는 농업생산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황무지 개간등 새로운 경작지를 개발하도록 장려하고, 제방을 쌓고, 용수로를 건설하는 등 권농정책과 농촌보호정책을 병행했다. 일본의 경작지는 무로마치 시대 전기에 94만 정보였는데, 전국시대 말기에는 163만 정보에 달했다.

농민에 대한 직접지배를 강화하여 영국내의 토지와 농민을 장악했으며 연공을 통일 하고, 경작지 파악을 위해 겐치를 실시했다. 따라서 경작지와 경작자를 정확하게 파악해 세금 수취의 효율을 높였다. 이렇듯 센고쿠다이묘는 경제력을 배경으로 전력을 강화하였다. 전국시대는 일본 역사상 병기가 가장 발달한 시대였다.

원거리용 병기는 예부터 사용하던 활과 황승총인 뎃포(鐵砲)가 있고

접전용 병기는 도검과 창으로 크기, 길이, 용도에 따라 다양한 종류가 있었다.

 

1) 조총(뎃포) : 16세기 중기 필리핀에서 명나라로 향하던 포르투갈 화물선이 규슈의 남쪽 섬 다네가시마에 표착한 것을 계기로 일본에 뎃포가 유입되었다.

다네가시마 영주는 거금 2천금을 주고 뎃포 2정을 구입하여 화약, 총기 제조법을 배우게 한다. 그 후 10년 후 뎃포는 대량 생산되어 일본 전역에 보급되고 30년 후 실전에서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전투로 15755월 미카와의 나가시노 전투를 들 수 있는데 오다 노부나가는 뎃포를 교대하면서 사격을 했다고 한다.

뎃포의 전래는 전쟁 방식을 크게 변화시켰는데 활을 사용하는 기마전법을 무력화시키고 뎃포대를 앞세운 보병의 집단전법이 중시되어 아시가루를 비롯한 보병이 군사력의 중심이 되었다.

 

2) 일본도 : 당시 아시아 사회에 큰 충격을 줬던 무기로 일본도가 병기로 뛰어난 점은 길고, 가볍고, 양손으로 휘두르므로써 빠르고, 예리하다는 데 있다.

왜구 격파에 큰 공을 세웠던 명나라 장수 척계광에 의하면

왜구가 중국에 들어와 일본도를 알게 됐다. 왜구는 몸을 가볍게 하고 빠르게 다가오는데 여기에 당한다. 긴 검을 두 팔로 휘두르면 반경 약 4.5m를 휘두른다.

두 손 무기임에도 불구하고 두 개의 무기를 겸용할 수 있다.“고 했다.

(조총+)

카타나 : 칼날 70cm, 하급 무사부터 고급 지휘관까지 대부분 사용한

일본의 전통 도검. 끈없이 허리춤에 꽂아 착용한다.

타치 보다 한 단 계 낮은 위치의 도검. 한손으로 쓰기 적당.

와키자시: 40~50cm의 짧은 칼, 무로마치 시대 후기부터 사용. 전국시대 백병전 등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보조무기로 이용.

 

3) = 야리, 일반 농민을 짧은 기간 대규모 병력으로 훈련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장창보병대가 창설되었다.

가마야리: 창 날 부분 낫이 달려 주로 말탄 부장들이 사용했다

(임진왜란당시 가토기요마사 사용)

스야리: 3m, 3kg 일반 병사들 사용한 흔한 창, 하급 병사 대량 지급

나가에야리: 5~6m, 하급 무사( 일반병사=아시가루), 나가에야리를 장착한

아시가루는 전투의 향방 가르는 존재가 될 만큼 전국시대 중요한 무기.

장창부대 3천이 1만의 보병부대 격파 가능.

오미야리: 거대한 직선 날을 가진 전국시대 특유의 창.

날이 거대한 만큼 무게를 줄이기 위해 날 중앙에 음각을 팠으며 박력감으로 상대에 큰 위협이 되는 무기, 날의 무게를 이용해 상대의 갑옷 관통이 가능,

말의 다리를 공격하는데도 유용. 오다노부나가에게 치명상을 입혔던 창으로 유명.

나기나타 : 특이한 창, 기마전에서 기수가 사용해 큰 효과.

전국시대에는 아시가루의 창을 이용한 집단전이 주를 이루었기 때문에 주요 무기에서 밀려나 여인들의 호신 무기가 됨.

나가마키 : 나기나타의 확대형. 창을 잘 다루지 못하는 병사에게 지급된 보조무기

 

4) : 장궁, 일반 농민에게 멀리서 전투가능한 활을 훈련

 

5) 진가사: 일반병사인 아시가루의 투구, 철판을 원뿔 모양으로 두르고 옻칠을 함.

 

 

4. 나가시노 전투 ( 1575629)

나가시노 전투는 덴쇼3521일 미카와 나가시노 성(현 일본 아이치현 신시로시 나가시)를 둘러싼 오다 노부나가, 도쿠가와 이에야스 연합군 38000명과 다케다 가스요리군 15000명 사이에서 일어난 전투이다.

노부나가 군은 당시 최신 병기였던 철포를 3000자루 준비하고 신전법인 3단 발사를 실행했으며 당시 최강의 다케다 기마대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섬멸되었다고 한다. 노부나가, 이에야스 연합군은 나가시노 성 바로 앞 시타라가하라에 방어진을 구축하고 강을 사이에 둔 대지 양쪽의 경사면을 깍아 마방책을 배치하였다. 즉 노부나가는 철포대를 주력으로 하여 수비하며 다케다의 기마대를 쫓아 사격하는 전술을 세운 것이다.

노부나가 연합군의 전사자가 아시가루 졸병이였던 것에 비해 다케다군 전사자가는 신겐의 4대천왕 중 3명이 전사하는 등 유명인물이 다수 사망했기에 피해가 컸다.

철포 3000자루, 3단 발사 전법은 역사상 사실보다 과장되었을 것으로 근래 재조명되고 있지만 당시로써는 최대 규모의 철포대 투입과 기마대를 막기 위한 마방책이 활약한 것은 사실이다.

 

5. 결론

 

  일본의 전국시대는 신흥세력인 센고쿠 다이묘들 - 주요 다이묘(영주) : 오와리의 오다 노부나가, 미카와의 도쿠가와 이에야스, 다케다 신겐, 우에스기 겐신, 모리 모토나리, 호조 우지야스 - 의 교토를 차지하기 위해 벌인 각축전이라 할 수 있다. 기존의 슈고 다이묘와 다른 신흥세력인 센고쿠 다이묘들이 등장하고 정치, 경제적 발전을 통해 전력을 강화하고 세력을 확장하는등 큰 변화를 일으켜 일본 중세에서 근세로의 전환 기점이 되는 시기가 된다.

특히 16세기 포르투갈인에게서 전해진 조총은 당시 경이적인 무기로 일본 전국시대 통일 전쟁에 있어 체력과 무술실력을 기반으로 한 칼, 창 무기 위주의 기존의 전투 양상의 변모와 성곽 건축 형태 변화등을 가져왔다. 즉 칼, , 기마병을 무력화하는 무기로 조총이 사용되었고 통일전쟁에 기여했다.

다케다 신겐의 아들 다케다 가쓰요리와 노부나가, 이에야스 연합군이 벌인 전투 나가시노전투를 대표적인 전투로 들 수 있다.

 

일본 전국시대 통일전쟁, 나가시노 전투에서 보여지는 전투의 양상이 전쟁 방식의 변화로 인한 새로운 시대흐름이라고 할 수 있으며 통일 전쟁 이후 조선을 침략해 벌인 전쟁에서 일본군의 승리는 이러한 시대적 변화의 연장선이라 볼 수 있겠다. 그 대표적인 전투가 충주 탄금대전투이다. 임진왜란 시작된 후 최초의 대규모 야전으로 달천평야에서 전투가 벌어졌으나 신립장군이 전투 후반 탄금대에서 최후를 맞이해 탄금대 전투라고 이름이 붙었다. 조선 명장 신립과 일본군 선봉장 고니시 유키나가(소서행장)의 대결로 한일 전쟁사에서 드문 정규군의 대규모 전투였으나 기병대 보병의 전혀 다른 병종의 구성으로 기마전술과 조총전술의 대결 구도가 조총부대 활약한 일본 통일 전쟁과 같으며 그 경험을 바탕으로 위력을 발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일본 전국시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본 전국시대 통일전쟁1  (0) 2023.12.28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