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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그리스 세계와 그 문화 

  

   제3절 페르시아전쟁과 아테네의 민주정치 

 

   클레이스테네스의 개혁

- 히피아스의 추방(510 B.C.)으로 참주정치 쓰러지자 이를 타도하는 데 협력했던 귀족과 평민사이 대립, 분쟁 발생

-  이 분쟁에서 추방된 귀족 클레이스테네스, 아테네로 귀환, 평민의 지지 획득, 스파르타 지원, 반대파 귀족 분쇄, 민주개혁

-  개혁 목표 혈연, 지연적 유대, 경제적 이해관계 배제, 아테네 전 시민 평등한 참정권 부여, 새로운 행정 구획 마련

-  촌락 단위 기본 행정구 마련, 노예, 재유 외인 제외한 모든 구민 등록, 등록 구민 핏줄, 재산, 직업 무관 동한 참정권 부여

- 솔론 때의 4백인회의 대신 5백 인 회의 새로운 행정기관, 실질적 통치기관으로 아테네 재정, 전쟁, 외교 등 관장

  50명씩 10개의 워원회, 각 위원회는 1년의 10분의 1, 즉 36일간 원형청사에 집무, 위원장은 매일 교대

- 클레이스테네스의 국제는 기원전 502년 발효 시작, 아테네 결정적으로 민주정치로 발전

 도편추방(Ostracism)는 클레이스테네스의 정신 계승, 이후 제정된 것, 참주 될 위험인물, 6,000개 이상, 10년간 추방

- 아테네 시민 사이 다른 폴리스에서 볼 수 없는 강한 자부심, 애국심

 

   페르시아전쟁 

- 아테네 민주정치 기반 구축하지 얼마 안 가서, 아테네뿐만 아니라 그리스 전체 위협

- 오리엔트 통일한 페르시아의 서방으로 진출, 일찍부터 소아시아의 해안지대 그리스식민 시들 경제, 문화 본토보다 발달 선도적 지위에 있었으나 약한 정치적 유대, 당파, 계층 대립의 내분이 계속, 소아시아 강대국 리디아 격파(548 B.C) 후 그리스 본토 겨냥

- 이오니아식민시들의 반란(499~494 B.C) 진압 후 페르시아의 다리우스왕 대군을 헬레스폰트와 트라키아 방면 파견, 폭풍 함대 손상, 철수

- 2년 후 기원전 490년 아테네 북방 약 25마일 지점, 마라톤에 상륙, 아테네, 그리스 전체 위기 였으나 아테네와 적대 폴리스 기회 노리고, 지원 약속 스파르타 군대 파견 하지 않음, 아테네 홀로 동방의 강적과 대결, 승산 없었으나 

밀티아데스 지휘, 애국심 아테네 시민의 중장보병 밀집대, 페르시아 격퇴, 승리 소식을 아테네로, 마라톤경주의 유래.

- 중장보병 밀집대전술 기원전 7세기에 이미 출현  기원전 6세기 후반 아테네 무겁고 값비싼 청동 흉갑 대신 마, 가죽, 금속의 장점을 살린 가볍고 값싼 복합형 흉갑 발명, 작은 모자 비슷한 헬멧 사용, 농촌, 도시 중산하층도 자담 무장 가능, 

밀집대의 견고성에 기민한 기동성 첨가, 마라톤 승리 '달리는 중장보병'이 큰 역할. 

- 페르시아 국내사정으로 재침까지 10년 기간, 휴전기에 준비, 아테네 대함대 건조, 폴리스들 아테네 중심 단결

- 기원전 480년, 다리우스 계승자 크세르크세스의 침공, 스파르타 용사 들 테르모필레 전투, 레오니다스왕 이하 전원 전사

중부 그리스 폴리스들 항복, 페르시아군 앗티카 평야로, 지상 대적 불가로 테미스토클래스는 아테네 시민을 살라미스로 철수, 해전에서 결전 시도, 교묘한 유도작전으로 살라미스해전 아테네 함대 대승, 페르시아 침공 단념, 귀국. 

- 다음 해(479 B.C) 페르시아 아테네와 스파르타 이간, 재차 앗티카 점령, 아테네시 완전 파괴. 아테네 비롯 10만여의 그리스연합군 플라타이아 전투에서 페르시아 군 격파, 아테네 주축 그리스 함대 에게해 사모스섬 진공 페르시아함대 대파

- 페르시아전쟁 그리스의 승리, 동방 전제주의 대한 폴리스의 시민적 자유의 승리 의미, 기원전 5세기의 찬란 고전기문화를 앞둔  유럽사의 결정적 중요성이 있다. 

 

  아테네제국

- 페르시아 전쟁 후 아테네를 맹주로 한 해상동맹 델로스(Delos)동맹 탄생. 동맹 시 제공 자금 관리 금고 델로스섬에 두고 아테네 관리, 위임, 아테네제국 변모 가능성 강, 페르시아 위협 약화, 

- 기원전 5세기 중엽 아테네 대도시 팽창, 에게해 해상무역과 그리스세계의 상공업의 중심지

- 동맹 시에 지배 강화, 강제적 공납금으로 변질, 델로스 섬의 공동금고 아테네로 이동(454B.C) , 동맹시 대부분 종속적 지위로 격하, 아테네 요구하는 공납금 납부, 재판도 아테네의 시민재판의 결정에 따르게 됨

- 동맹 시의 공납금, 해상무역에서의 아테네 패권, 기원전 5세기 중엽 이후 아테네의 경제적 번영 가장 중요한 기반

 

 아테네의 민주정치

- 살라미스 해전 승리, 수병 속한 최하층 세력 강화, 대함대 건조, 해상무역 발전, 상공인 경제적 지위, 발언권 증대

클레이스테네스의 기초 마련 민주정치 페르시아 전쟁 후 한층 발전, 페리클레스시대(457~429 B.C)에 민주정치 완성 

- 성년 남자 전원 참석, 발언 민회 권한 대폭 강화, 입법 관여, 5백 인 회의 권한 축소, 10명 장군 권한 확대, 최고정무위원회 기능 수행, 오늘날의 내각에 해당

- 국고에 의한 수당제 확대, 1년 임기제, 시민으로 원하면 누구나 공직을 맡을 수 있게, 민회의 권한 강화는 시민 누구나 직접 국정에 참여할 수 있는 직접민주주의 의미

- 페리클레스의 펠로폰네소스전쟁 초기 전사 시민에 대한 추도연설 : 우리의 정체는 이웃 나라의 것을 흉내 낸 것이 아니다. 우리가 타국을 모방하는 경우보다 그들이 우리를 모범으로 삼는 경우가 더욱 많다. 우리의 국제를 민주정치라고 부른다. 그 이유는 권력이 소수의 수중에 있지 않고 전시민에게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있어 개인적인 분쟁을 해결하는 경우 만인은 법 앞에 평등하다. 그러나 우리가 어느 개인을 타자보다 우선하여 공직에 임명할 때 그것은 그가 어느 특정한 계층에 속해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갖고 있는 실질적인 재능 때문이다. 국가에 대하여 유익한 봉사를 할 수 있는 자라면 누구든지 빈곤 때문에 정치적으로 햇빛을 보지 못하는 일이 없다. 우리의 정치생활도 그러하다. 우리는 사생활에 있어 자유롭고 관대하지만 공사에 있어서는 법을 준수한다. 

 

  우리는 아름다운 것을 사랑하지만 사치나 화려함에 흐르지 않으며, 지적인 사물을 사랑하지만 유약해지는 일이 없다. 우리는 부를 자랑으로 생각하지 않고 적절하게 사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무도 빈곤을 수치로 생각할 필요가 없으며, 오직 가난을 면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음을 부끄럽게 생각한다. 우리에게 있어 각 개인은 그의 사사로운 일에 관심을 가질 뿐 아니라, 이에 못지않게 국사에도 관심을 가진다... 모든 것을 감안할 때 우리의 폴리스야말로 전그리스인이 배워야 할 배움터이다. 

 

 

민석홍, 제2판 서양사개론, 삼영사, 2006, pp6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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