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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배사 충주지회 및 여해인문학스터디  16회 모임 

 

- 일시 : 2024년 5월 15일 수요일 오전11~

- 장소 :  문경 보현정사 (문경읍 각서윗길 45)

- 참석 :  총9명(존칭생략)  - 일심(임원빈), 정기화(관아골), 해주오씨(김경은), 조령(박동수), 이정(오희연)

충주목사( 표영춘), 충주감영(김명란),  이택주(닉네임을 다시 확인하겠습니다), 권혁분

 

- 스터디 내용 : 부처님 오신날 이순신과 스님들 

 

 

 권혁분, 김명란 두 보살님 덕분에 부처님 오신 뜻 깊은 날 보현정사에서 야외스터디를 진행했습니다. 

마침 스승의 날을 맞아 감사의 시간도 가졌구요^^

 

아름다운 자연속, 그림같은 산사, 맛있는 비빔밥, 떡, 음료(권혁분 선생님의 꽃차는 정말 최고십니다)

멋진 공연들까지 멋진 추억 가졌습니다. 

주지스님과 준비해주신 많은 분들의 노고에 감사 드립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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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배사 충주지회 및 여해인문학스터디 첫 답사(현충사) 및 15회 모임

 

- 일시 : 2024년 4월 10일 수요일 오전8시30분~

- 장소 : 현충사- 묘소 - 게바위

- 참석 :  총10명(존칭생략)  - 일심(임원빈), 정기화(스터디회장), 해주오씨(김경은), 조령(박동수), 선유도(김병석),

충주감영(김명란), 김선남, 표영춘, 이택주,권혁분, 경상우수사님(묘소에서 합류)

 

- 다음모임 : 2024년 5월 15일 수 (석가탄신일)  - 주제: 임진왜란와 승병장

- 안건내용 :  현충사-묘소-게바위 답사 

 

2023년  스터디 모임  12회 진행

2024년 13회(2/19) , 14회(3/11)

            

2023년 여해인문학스터디 12회차 진행에 이어 2024년 모임은 좀 더 체계적인 진행을 위해 

회장님(정기화) 과 회원님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4월 이순신 장군 탄신일 기념하여 답사를 진행했습니다.

모임의 첫 답사인데다 워낙 바쁘신 회원님들이시기에 혹시나 마음 졸였던 일정이었지만

답사에 최적 날씨와 일심님의 지원덕분에 감사히 다녀왔습니다. 

 

- 답사 일정 

    8:30 충주 무술공원 출발 ~ 10:00  현충사 도착
    10:30~12:20 현충사 답사
    12:30~13:30 점심
    13:30~ 15:00 충무공 묘소 답사
    15:20~ 16:00 게바위 답사
    16:00~18:00 충주도착
    18:00~19:50 저녁식사, 해산

 

편안한  봄 날씨, 사방 시원하고 너른 뜰에 화사한 꽃과 나무들 

하늘과 땅에 뜻깊은 의미를 마음에 담고

일심님의 지휘아래 우아하고 열정적이신 회원님들과 

찬찬히 곳곳을 둘러보았습니다.  

 

왼편부터 표영춘님(한국서예협회충주지부장), 조령님, 이택주님, 김선남님,해주오씨,정기화님(스터디 회장,문화관광해설사),권혁분님(문화관광해설사), 충주감영님, 선유도님, 일심님

 

 

 

                       게바위는 확장 공사 중 - 주차장도 넓게 만들어지고 새로운 기념비석도 세워졌습니다. 

                                                                                충주 귀환 뒷풀이

우리의 낭만 자객? 이시대의 로맨티스트 선유도님~ 멋진 기타 실력, 노래실력 그리고 함께 하나되는 마무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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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 11월 19일 오늘은 1598년 노량해전이 벌어졌던 바로 그날, 요즘 큰 관심사인 영화 '노량'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날이다. 다사다난 했던 2023년 한 해의 마지막 날이기도 한 오늘 현충사에 참배를 다녀왔다. 

 

 

노량 해전은 임진왜란, 정유재란 7년 전쟁을 끝내는 전투이자 이순신 장군 최후의 해전이다. 

 

난중일기는 11월17일까지만 기록이 있고 11월 18일과 19일 상황은 다음과 같다. 

 

1598년 11월 18일(양 12월 15일, 기해) 밤에 순천에 있던 고니시 유키나가의 부대를 일본으로 철수시키기 위해 사천에 주둔했던 시마즈 요시히로가 500여척을 이끌고 광양만으로 향했다. 이날 이순신은 하늘에 기도를 했다고 한다. 

 

11월 19일(16일, 경자) 이순신과 진린의 조명 연합군 함대 400여 척은 시마즈 요시히로의 일본 수군 500여 척과 노량에서 대격전을 했고, 이순신은 전사했다.

- <선조실록> 선조31년(1598) 11월25일 기록된 명나라 도독 진린의 보고서에 따르면 11월 19일 인시에서 사시까지 부산과 사천 등의 일본군과 노량도에서 크게 싸웠고, 이순신은 직접 군사들 앞에서 싸우다가 철환에 맞아 전사했다고 했다.- 

  이 전투에서 일본군 전선 200여 척이 격침되었고, 조명연합군은 60여 척의 피해를 당했다. 조선군에서는 통제사 이순신을 포함해 가리포 첨사 이영남, 낙안 군수 방덕룡, 흥양 현감 고득장 등 20여 명의 장수가 전사했고, 일본군의 공격을 받은 진린을 구하려고 달려간 진린의 아들 진구경이 부상당했고, 명나라 수군 좌선봉장 등자룡이 전사했다. 이후 삼도 수군통제사에 충청병사 이시언이 임명되었다. 영의정 류성룡은 파직되었다. 

 

12월 23일(1599년 1월 19일, 갑술) 일본군의 마지막 군대가 부산을 떠났다.     

                                                                                                                  -박종평 옮김, 난중일기, 글항아리, 2018, 638p.

 

 2023년 12월 30일 충주 앙성, 오후에 함박눈이 펑펑 쏟아져 산천을 뒤덮더니 새벽에는 장대같은 비가 억수로 내렸다. 

한 해의 마지막 날이라 하니 평상시와 다른 마음이 들고 며칠 전 영화 '노량'에서의 이순신장군의 어이없는 찰나의 전사로 속상한 마음이 컸던 터 날짜에 맞춰 참배를 드리면서 여러가지 정리를 하는 것도 제법 괜찮을 듯 생각이 들었었다. 

 

  2016년 서울 방배동에서의 어느날 낯선 분에게서 어머니께 연락을 취하셨고 그 분은 경상우수사-아무 이석희 선생님으로 시조등 정가를 공부하던 옛스승님의 전수소에서 몇 번 목례만 나누었던 분으로 옛 스승님께서 끝끝내 내 연락처를 주지 않아 인터넷으로 한달을 찾아 어머니 전화를 통해 연락해 오셨던 것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신기하게도 아무 선생님의 큰 따님과 내 얼굴이 정말 많이 닮아 있었고, 아무 선생께서도 처음에 내 얼굴을 보시고 깜짝 놀라셨었다고 했다.  그리고는 지금껏 아버지와 딸같은 마음이다.) 

공부에 대한 열정을 사심없이 전해주시는 마음을 전달 받았고, 앞 뒤가 살짝 다른 예체능계 속에서, 열정속에 빛나는 집중력과 참신한 아이디어가 은근히 무시당하고 질투 받는 것을 보며 돕고 싶은 마음도 들었었다.  

그리고는 제안하시기를 "이순신장군 공부를 함 하면 어떻겠느냐 관심 있으마 한번 해보면 좋겠다. 젊은 나이에 노래도 꽤하고 공부도 하면 좋겠다 싶습니다" 하셨다. 담박에 "역사 공부는 관심 있습니다. 공부하고 싶습니다." 말씀드리자

바로 '이배사(이순신을 배우는 사람들) 다음 카페'를 안내 해 주시고 여러 훌륭한 선생님들을 설명해 주시며 각종 세미나 등 정보를 주시는 등 공부길을 인도해 주셨다.  당시에 새로 시작한 일로 정신 없었던 시기라 시작조차 쉽지 않았는데 선생님께서는 그렇게 심하게 속상해 하시고 야단하시고 큰 소리 하시며 공부하기를 재촉하셨었다. 

하루는 새벽 5시경 전화를 하셔서 뭐가 그리 속상하셨었는지 "지금 잠이 오나? 이 따위로 공부할꺼면 하지도 마라... 등"

화를 내셨던 기억이 있다. 나는 별로 잘 못한 것이 없었던 것 같은데 선생님께는 늘 죄인이었다.

요즘엔 절대 그러지 않으신다...오히려 웃으시면서 "내가 경은이를 잘 몰랐다." "이렇게 잘 해줘서 고맙다"  "내 기분 좋다" 말씀 하시지만 솔직한 마음은 아직도 큰소리하시는 선생님이 좋고 칭찬해주시면 괜히 서늘하다.. ㅎ

이듬해에 어머니께서 공부에 합류하셨고 지금도 밤낮으로 책으로 보시며 어머니는 "너는 나보다 아는게 별로 없는 것 같다"고 하신다... 두 분의 열정과 집중은 평생에 걸려도 못 따라갈 듯 싶다. 사실이 그렇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님 공부를 시작하고 내 전공 분야 외의 여러 분들을 만나며 감사한 일이 제일 크지만 겪지 않아도 될 경험도 여러 차례 있었다. 앞으로도 안 그렇겠냐마는 최소한, 적어도 남의 것을 내 것인양 함부로 하는 짓은 보지 않기를 바란다. 특히나 노쇠하고 병약하고 외로운 사람에게는 , 누가 보든 보지 않던 그렇게 하면 하늘이 알고 땅이 알아 처리 되겠지마는 그 과정에서 별거 아닌 내게도 사람 취급 못받는다... 보이지 않는 기운이 얼마나 무서운지 빨리 깨닫기를...

 

  그리고 가장 가슴아픈건 이별하는 일... 올해 4월에 집 마당에서 동네 어른들을 모시고 외할머니 백수잔치를 열었었다. 

근래에 자주 없는 귀한 잔치라고 많은 분들이 참석해 주시고 축하해 주셨었는데 어머니는 백수잔치 행사명을 이렇게 지으셨다. ' 아름다운 이별을 위한 서곡 ' ... 수년 전 부터 어머님은 매일 매일 마음을 졸이신다. 특히나 잔치를 준비하는 날들에서는 그 마음 힘듦이 더 컸었다. 지금도 매일 돌아가실 것처럼 아침 저녁으로 할머님 곁을 지키신다.   

 

나는 감히 이순신 장군님과 같이 살고 있다고 생각 들 때가 참 많다... 끊임없이 공부하고 끊임없이 준비하고 끊임없이 대처하고 끊임없이 움직이며 끊임없이 생각하고 끊임없이 정성을 다하는 그리고 한사람도 빠뜨림 없이 그 수고를 알아주는..

실지로 자면서도 생각한다고 말씀하신다...

정말이지 단 한 순간도 놓지 않음을 정말 알 수 있는가? 나는 안다고 할 순 없지마는 매일 매순간을 눈으로 보면서 살고 있다. 어머니를 통해서....  

정말이지 감히 말 할 수 있다. 나는 이순신 장군의 생애와 동북아시아의 당시 역사를 자세히 몰라도 이순신 장군이 어떤 마음씀씀이와 어떤 정성으로 사람의 삶을 살아가셨을까... 가히 짐작이 가능할 것도 같다.  어머니를 통해서 말이다...

그리고 당시 이순신 장군과 함께 삶을 꾸려갔을 여러 장수들이 얼마나 감복하고 감탄하고 힘겨웠을지도 가히 짐작을 한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이니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그 이별을, 가슴 아린 이별을 내가 존경해 마지 않는 이배사 카페에서의 여러 선생님들과 관련된 이별은 왜그렇게 가슴에 사무치는지 알 수가 없다.  나이만 들었지 아직 미숙하기만 한 사람이라 그런 듯 싶다.  늘 열정과 패기로 중심에 계시는 한 선생님의 사연에 어찌 인사를 나눌지 몰라 한 동안 카페에 들어가지도 못한 때도 있었다. 

최근에는 내 인생 최대의 맘고생일만큼 가슴이 아팠던 기억으로 아직도 가슴에 맺혀 사라지지 않고 있는 아까운 이별...

내가 손이라도 한번 잡아봤으면 말도 안하지, 무슨 인연이라고 이다지도 마음에 충격으로 파고 들어 떨쳐내지 못하는지 모르겠다.  지난 10월 21일 충주에서 '이순신의 어머니' 공연 때는 아무도 모르게 고인의 이름으로 자리를 마련해 공연을 보여 드렸다. 꼭 오셨다 가셨으리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그리고 만족은 안되겠지만 그렇게도 좋아라 하시던 못다한 공부의 기쁨을 누리는 오늘의 내게, 네게 책임을 지워본다...

 

  이제 2023년을 이별하는 시점에서 괜시리 마음의 정리가 필요한지 어제부터 날도 궂고 내 마음도 궂었다. 

김한민 감독도 한 해를 마무리 하는 시점에 노량해전의 날짜에 맞춰 이순신 장군의 순국으로 온 국민이 한 해를 잘 마무하기를, 새해를 준비하기를 바랬던가 싶다. 큰 노력 들이는 만큼 역사 속에서 이순신 장군의 삶을 좀 더 관통하기를 바란다.

 

감히 생각컨데,  대한민국 사람으로써 이순신 장군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그 속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고 따라서 그것을 토대로 창작물을 만들어 낼 때 좀 더 온전해 지기가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순수하게 진심으로 그 분에 대해 공부하는 일은 너무도 필요하다.

많은 존경하는 선생님들이 해오시는 이 작업에

이제는 미약한 힘이나마 보태고 있다고 믿고 걸어가고 싶다.... 

 

 안녕~ 2023년 ~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50대 여자의 몸과 마음의 힘듦도 안녕~ 

 

2024년 이끌어 주시는 존경하는 교수님들, 모든 선생님들 강건하시기를 바랍니다!!!

갑진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하시는 일 모두 성취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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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새로운 전쟁 방식과 무기

  

  센고쿠 다이묘는 부국강병의 기반이 되는 농업생산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황무지 개간등 새로운 경작지를 개발하도록 장려하고, 제방을 쌓고, 용수로를 건설하는 등 권농정책과 농촌보호정책을 병행했다. 일본의 경작지는 무로마치 시대 전기에 94만 정보였는데, 전국시대 말기에는 163만 정보에 달했다.

농민에 대한 직접지배를 강화하여 영국내의 토지와 농민을 장악했으며 연공을 통일 하고, 경작지 파악을 위해 겐치를 실시했다. 따라서 경작지와 경작자를 정확하게 파악해 세금 수취의 효율을 높였다. 이렇듯 센고쿠다이묘는 경제력을 배경으로 전력을 강화하였다. 전국시대는 일본 역사상 병기가 가장 발달한 시대였다.

원거리용 병기는 예부터 사용하던 활과 황승총인 뎃포(鐵砲)가 있고

접전용 병기는 도검과 창으로 크기, 길이, 용도에 따라 다양한 종류가 있었다.

 

1) 조총(뎃포) : 16세기 중기 필리핀에서 명나라로 향하던 포르투갈 화물선이 규슈의 남쪽 섬 다네가시마에 표착한 것을 계기로 일본에 뎃포가 유입되었다.

다네가시마 영주는 거금 2천금을 주고 뎃포 2정을 구입하여 화약, 총기 제조법을 배우게 한다. 그 후 10년 후 뎃포는 대량 생산되어 일본 전역에 보급되고 30년 후 실전에서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전투로 15755월 미카와의 나가시노 전투를 들 수 있는데 오다 노부나가는 뎃포를 교대하면서 사격을 했다고 한다.

뎃포의 전래는 전쟁 방식을 크게 변화시켰는데 활을 사용하는 기마전법을 무력화시키고 뎃포대를 앞세운 보병의 집단전법이 중시되어 아시가루를 비롯한 보병이 군사력의 중심이 되었다.

 

2) 일본도 : 당시 아시아 사회에 큰 충격을 줬던 무기로 일본도가 병기로 뛰어난 점은 길고, 가볍고, 양손으로 휘두르므로써 빠르고, 예리하다는 데 있다.

왜구 격파에 큰 공을 세웠던 명나라 장수 척계광에 의하면

왜구가 중국에 들어와 일본도를 알게 됐다. 왜구는 몸을 가볍게 하고 빠르게 다가오는데 여기에 당한다. 긴 검을 두 팔로 휘두르면 반경 약 4.5m를 휘두른다.

두 손 무기임에도 불구하고 두 개의 무기를 겸용할 수 있다.“고 했다.

(조총+)

카타나 : 칼날 70cm, 하급 무사부터 고급 지휘관까지 대부분 사용한

일본의 전통 도검. 끈없이 허리춤에 꽂아 착용한다.

타치 보다 한 단 계 낮은 위치의 도검. 한손으로 쓰기 적당.

와키자시: 40~50cm의 짧은 칼, 무로마치 시대 후기부터 사용. 전국시대 백병전 등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보조무기로 이용.

 

3) = 야리, 일반 농민을 짧은 기간 대규모 병력으로 훈련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장창보병대가 창설되었다.

가마야리: 창 날 부분 낫이 달려 주로 말탄 부장들이 사용했다

(임진왜란당시 가토기요마사 사용)

스야리: 3m, 3kg 일반 병사들 사용한 흔한 창, 하급 병사 대량 지급

나가에야리: 5~6m, 하급 무사( 일반병사=아시가루), 나가에야리를 장착한

아시가루는 전투의 향방 가르는 존재가 될 만큼 전국시대 중요한 무기.

장창부대 3천이 1만의 보병부대 격파 가능.

오미야리: 거대한 직선 날을 가진 전국시대 특유의 창.

날이 거대한 만큼 무게를 줄이기 위해 날 중앙에 음각을 팠으며 박력감으로 상대에 큰 위협이 되는 무기, 날의 무게를 이용해 상대의 갑옷 관통이 가능,

말의 다리를 공격하는데도 유용. 오다노부나가에게 치명상을 입혔던 창으로 유명.

나기나타 : 특이한 창, 기마전에서 기수가 사용해 큰 효과.

전국시대에는 아시가루의 창을 이용한 집단전이 주를 이루었기 때문에 주요 무기에서 밀려나 여인들의 호신 무기가 됨.

나가마키 : 나기나타의 확대형. 창을 잘 다루지 못하는 병사에게 지급된 보조무기

 

4) : 장궁, 일반 농민에게 멀리서 전투가능한 활을 훈련

 

5) 진가사: 일반병사인 아시가루의 투구, 철판을 원뿔 모양으로 두르고 옻칠을 함.

 

 

4. 나가시노 전투 ( 1575629)

나가시노 전투는 덴쇼3521일 미카와 나가시노 성(현 일본 아이치현 신시로시 나가시)를 둘러싼 오다 노부나가, 도쿠가와 이에야스 연합군 38000명과 다케다 가스요리군 15000명 사이에서 일어난 전투이다.

노부나가 군은 당시 최신 병기였던 철포를 3000자루 준비하고 신전법인 3단 발사를 실행했으며 당시 최강의 다케다 기마대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섬멸되었다고 한다. 노부나가, 이에야스 연합군은 나가시노 성 바로 앞 시타라가하라에 방어진을 구축하고 강을 사이에 둔 대지 양쪽의 경사면을 깍아 마방책을 배치하였다. 즉 노부나가는 철포대를 주력으로 하여 수비하며 다케다의 기마대를 쫓아 사격하는 전술을 세운 것이다.

노부나가 연합군의 전사자가 아시가루 졸병이였던 것에 비해 다케다군 전사자가는 신겐의 4대천왕 중 3명이 전사하는 등 유명인물이 다수 사망했기에 피해가 컸다.

철포 3000자루, 3단 발사 전법은 역사상 사실보다 과장되었을 것으로 근래 재조명되고 있지만 당시로써는 최대 규모의 철포대 투입과 기마대를 막기 위한 마방책이 활약한 것은 사실이다.

 

5. 결론

 

  일본의 전국시대는 신흥세력인 센고쿠 다이묘들 - 주요 다이묘(영주) : 오와리의 오다 노부나가, 미카와의 도쿠가와 이에야스, 다케다 신겐, 우에스기 겐신, 모리 모토나리, 호조 우지야스 - 의 교토를 차지하기 위해 벌인 각축전이라 할 수 있다. 기존의 슈고 다이묘와 다른 신흥세력인 센고쿠 다이묘들이 등장하고 정치, 경제적 발전을 통해 전력을 강화하고 세력을 확장하는등 큰 변화를 일으켜 일본 중세에서 근세로의 전환 기점이 되는 시기가 된다.

특히 16세기 포르투갈인에게서 전해진 조총은 당시 경이적인 무기로 일본 전국시대 통일 전쟁에 있어 체력과 무술실력을 기반으로 한 칼, 창 무기 위주의 기존의 전투 양상의 변모와 성곽 건축 형태 변화등을 가져왔다. 즉 칼, , 기마병을 무력화하는 무기로 조총이 사용되었고 통일전쟁에 기여했다.

다케다 신겐의 아들 다케다 가쓰요리와 노부나가, 이에야스 연합군이 벌인 전투 나가시노전투를 대표적인 전투로 들 수 있다.

 

일본 전국시대 통일전쟁, 나가시노 전투에서 보여지는 전투의 양상이 전쟁 방식의 변화로 인한 새로운 시대흐름이라고 할 수 있으며 통일 전쟁 이후 조선을 침략해 벌인 전쟁에서 일본군의 승리는 이러한 시대적 변화의 연장선이라 볼 수 있겠다. 그 대표적인 전투가 충주 탄금대전투이다. 임진왜란 시작된 후 최초의 대규모 야전으로 달천평야에서 전투가 벌어졌으나 신립장군이 전투 후반 탄금대에서 최후를 맞이해 탄금대 전투라고 이름이 붙었다. 조선 명장 신립과 일본군 선봉장 고니시 유키나가(소서행장)의 대결로 한일 전쟁사에서 드문 정규군의 대규모 전투였으나 기병대 보병의 전혀 다른 병종의 구성으로 기마전술과 조총전술의 대결 구도가 조총부대 활약한 일본 통일 전쟁과 같으며 그 경험을 바탕으로 위력을 발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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